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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23, 2023

세포 자동자와 능동 물질: 비교하고 접점을 탐색하기

콘웨이의 생명 게임으로 가장 잘 알려진 Cellular automata (세포 자동자) 에서는 그 규칙과 초기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멋진 집단현상들이 보고된다. 자기 혼자서만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패턴, 무언가를 계속 멀리 쏘아보내는 패턴, 마치 영양분이 충분한 균들처럼 무한 증식하는 패턴 등이 있다.

이러한 세포 자동자를 이산적인 격자가 아니라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S Rafler가 만든 SmoothLife와, Bert Chan이 만든 Lenia 등이 있다 (아래 그림). 이들은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되다 보니, 정말로 동글동글한 원시적 생명체처럼 생긴 것들이 서로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해서 구조를 이루는 등 무척이나 신기하다. 후자의 Lenia를 만든 Bert Chan의 경우 구글브레인 도쿄 캠퍼스에 계신 분이고, 지금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visiting하고 계신 듯하다.

expanded version of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 and expanded universe." (링크).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biology of artificial life." arXiv preprint arXiv:1812.05433 (2018)).


한편, 현재 내 연구 주제인 능동물질(active matter)도, 에너지를 소모해서 스스로를 평형으로부터 멀게 유지하며 자기조직화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집단현상들을 나타낸다. 이들이 그 상호작용 규칙과 파라미터 범위에 따라 보여주는 여러가지 패턴은, 어떤 순간의 물질 분포와 미리 정해진 동역학적 규칙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해지는 노이즈값에 따라서, 그 다음 순간의 물질의 밀도분포 (혹은 입자기반 모형일 경우 각 입자들의 위치) 가 정해지는 방식으로 업데이트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러한 능동물질은 세포자동자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지어질 수 있어 보인다. 둘 다 공간 속에서 외부 입력 없이 에이전트들끼리의 상호작용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자명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포자동자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패턴들이, 생각보다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능동물질 패러다임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탐구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야의 발전사와 관련된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그 가장 큰 이유는, 세포 자동자의 변화 규칙을 실제로 implement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구현가능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즉 능동물질은 어디까지나 물리학 모형이기 때문에 물질 혹은 신호가 국소적으로, 즉 한 점에서 바로 인접한 다른 점으로 잇따라 전달되어야 한다거나, 실제 물리계 혹은 생체계에서 구현 가능한 메커니즘이어야 하는 등 여러 제약들이 존재한다. 반면 세포자동자의 경우에는 세포가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것도 가능한 등, 업데이트 규칙의 설정이 능동물질의 경우보다 훨씬 자유로운 듯하다. 주로 컴퓨터 아트 및 정보과학의 문화예술 응용 쪽 (정확히 어떻게 묶어 불러야 할지 모르겠음. 아무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나, Bert Chan 같은 분들) 에서 그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을 많이 탐구하는 듯하다.

이 두 가지 분야의 잠재적인 접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할 것이다. 세포자동자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physics-grounded된 모형을 보거나, 아니면 반대로 능동물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능동입자들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자유분방하게 세팅해주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단순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변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일종의 intelligence를 개별 입자 수준에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에 해당하는 것을 지난번에 최승준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다 (물리학전공자 출신으로 미디어아트 쪽에 계시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적극 접목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DeepDream으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모드빈체프 (Alexander Mordvintsev) 는 그 이후로는 neural cellular automata라고 해서, 세포자동자를 마구 흩뜨려 놓은 상태에서 출발시켜도 원하는 이미지로 수렴하도록 상호작용 규칙을 학습하는 매우 신기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법한 초록색 도마뱀 그림이 바로 그거다 (Growing neural cellular automata: 링크). 이러한 neural cellular automata는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성적 산업디자인에 응용하기도 했다 (아래 그림).

Neural cellular automata를 이용한 모양 완성 (shape completion),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 (출처: https://iclr.cc/virtual/2021/poster/2914, Zhang, Dongsu, et al. "Learning to generate 3d shapes with generative cellular automata." arXiv preprint arXiv:2103.04130 (2021).



그런데 이 모드빈체프가 최근에는 세포자동자가 아니라 입자 기반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 동기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추측으로는 아마도 위에서 말한 내 문제의식대로, 단지 컴퓨터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물리계, 이를테면 살아있는 세포들 혹은 나노머신들로 실현 가능한 상호작용 규칙을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인공적/자연적 신경망 쪽에 인상깊은 기여를 하신 분들이 living matter 쪽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아서 신기하다. 지난번에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소식에 대해 포스팅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뉴럴네트워크는 결국 여러가지 패턴을 표현가능하고 심지어 일반화까지 가능한 커다란 비선형 시스템이다보니, 생체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쪽이랑 그 방법론적 출발점은 달라 보이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뭔가 비슷한 종류의 관심사로 분류되는 듯하다.)


다음으로 그 반대 방향, 즉 능동물질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sophisticated하게 디자인하는 방향을 보자. 예컨대 주변을 인식하고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운동 능력도 매우 뛰어난 intelligent한 나노머신을 대량 만들어서 뿌려뒀다고 생각하면 되므로, 그리고 능동물질이 애초에 그런 것의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안 될 것은 없다. 물론 상호작용의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되도록 단순한 규칙에 따른 집단현상을 선호하는 통계'물리학'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물리적'으로 구현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참석했던 학회에서 Igor Aranson 교수님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분이 연구하신 것은 signaling (혹은 communicating) active matter인데, 능동물질의 구성 입자들이 단순히 자체 추진 및 상호간에 역학적 충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화학물질의 밀도파를 통해 신호를 원거리까지 전달한다는 개념이다. 이렇게 파동에 의한 원거리 신호전달이 존재하면, 파라미터 선택에 따라서 기존 능동물질 분야에서는 흔히 본적이 없고 마치 콘웨이의 생명게임에서 나올 법한 매우 다채로운 집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미지로 첨부한다. 화학적 신호가 아닌 음파 신호, 즉 입자들 자체의 진동을 서로 주고받을 때에 나타나는 패턴들도 소개해 주셨는데 (acoustic signaling), 구글 스콜라에 뜨지 않는 걸 봐서 bulletin으로만 있고 아직 논문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1. 우측 상단은 입자 시뮬레이션 기반 모형, 우측 하단은 밀도함수 기반의 모형인데 서로 잘 대응되는것이 보인다.(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2.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만약에 이런 양방향적 탐구들을 통해 세포 자동자와 능동물질 분야의 접점이 넓어진다면, 능동물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아진다. 예컨대 세포 자동자에서는 튜링 머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연구되어 있다. 크기만 충분히 크다면 세포자동자가 유니버셜한 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능동물질을 이용해서도 노이즈에 대해 강인한 튜링머신을 만들 수 있다면, 현재의 반도체 기반 디지털컴퓨터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unconventional computing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Herbert Jaeger의 리뷰논문에도 living system을 컴퓨터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unconventional computing은 저전력 컴퓨팅의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개인적으로는 특히 오차를 허용하는 딥러닝 패러다임과 궁합이 좋을거라는 상상을 하게된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과 약간 관련이 있다. 머리속 혹은 컴퓨터 속에 존재하면서 매우 고도화된 집단현상들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형들도, 결국에는 국소성, 보존법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역학법칙 등 여러 물리학적 제약을 받는 물리적 시스템으로써 실현될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통계물리학 전공이다 보니 열역학적 원리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 혼자 하고 있는 상상이고, 학위과정 동안에, 혹은 학위과정 이후에 이러한 방향의 커리어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내 능력과 주변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내 관심사 자체가 바뀔 수도 있고.

특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원거리 신호 전달 같은 게 있을 경우, 에너지 출입을 다루는 전통적인 열역학뿐만 아니라, 맥스웰의 악마 개념을 포함하여 정보 출입까지 다룰 수 있도록 일반화된 '정보열역학'을 적극 도입해서 새로운 결과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각각의 집단현상들에 underlying하는 열역학적 비용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생명체 및 생체모방 인공시스템들의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그리고 컴퓨팅 (특히 머신러닝) 구현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에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 혹은 필요하다면 에너지를 써서라도 원하는 기능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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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22, 2023

효율적인 문헌 조사의 방법: 리뷰논문을 중심으로

새롭게 살펴보는 세부 주제에 대해 문헌 조사를 하다 보면 논문 레퍼런스를 타고 한없이 가지를 쳐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적절한 시점에 끊지 못하면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정작 충분히 자세히 읽지는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대략 아래의 3단계 hierarchy를 바탕으로 한다면 해당 분야 논문들의 흐름과, 그 흐름 속에서의 중요한 논문들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물론 실제로 링크를 타고 타고 가다 보면 아래 순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진행이 되지만, 아래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염두에라도 두고 있으면 그래도 길을 덜 잃는 것 같다.

1. 관심키워드로 검색해서 걸리는 비교적 최신 연구논문들

2. 그것들에서 인용하고있는, 많이 인용된 리뷰 논문들

3. 그 리뷰논문들에서 언급하고있는, 패러다임을 촉발시킨 주요 논문들

(+ 4. 그냥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 (절제심이 무척 필요))

1번에서는 주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해서 어떤 새로운 현상들을 얻고 있는지 위주로만 살펴보고, 2 및 3에서 배경 이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는 것이 좋다.

이때, 당연한 말이지만 각 논문이 다른 논문을 언급하고 있는 구체적인 맥락을 읽어 가며 그걸 바탕으로 따라가는 게 좋다.

또한, 윈도우 숫자만 무조건 늘리지 말고, 한번 켠 것은 기록해둘지 패스할지 그 당일날 반드시 판단하고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보다 신중한 서치에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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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16, 2023

해외 이공계 커리어 관련 정보 (residency program, Simons foundation)

1. 레지던시 프로그램(residency program)

한국에 이것과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외국계 IT 회사들에는 residency program이라는 게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의과대학에서 수련생을 레지던트라고 하는것처럼, 회사들에서의 residency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심화된 전문성을 얻기 위한 훈련 과정인 듯하다.


그런데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회사들에서 운영하는 이러한 residency program들의 특징은, 주로 타 분야의 background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들의 분야, 곧 IT 부문으로 transition 시키기 위한 훈련과정이라는 점이다. 계약 기간 동안 급여를 꽤 많이 주고 프로젝트에도 참여를 시키는 등 인턴 직원 비슷한 대우이지만, 한편으로는 훈련과 멘토링을 받으면서 성과를 내야 하는 학생 비슷한 대우도 있는 것 같다 (끝마치는 걸 graduat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높은 성과를 보이면 정식 취업에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도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research 직무 쪽으로도 이러한 residency program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물리학 등 기초과학분야 백그라운드를 가진 채로 해외 연구개발직 취업을 생각한다면 이 단어를 알아 두고 제도를 잘 이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인원도 무척 적은데다 매년 열리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제도들에 대해 한국어로 된 정보는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작성해둔다.


2. Simons Foundation

Jim Simons는 순수 수학 및 물리학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면서, 매우 유명한 펀드매니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분이 수학을 전공한 배경 덕분인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쪽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Simons 재단에서 각 기관의 연구자를 위한 postdoc 및 faculty 펀딩뿐만 아니라, 아예 기초과학 및 계산과학 쪽으로 자체적으로 연구기관들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이 재단에서 내세우고 있는 토픽들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서, 만약 아카데미에 남고 싶다면 Simons 재단이 제공하는 펀딩과 포지션들도 알고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지원을 받으려면 무척 뛰어나야 할 것이다). 예컨대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Surya Ganguli 연구실에서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생명과학, 뇌과학 및 기계학습의 폭넓은 주제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데, 여기서 이번에 박사를 받은 분도 Simons 재단의 연구기관 중 하나인 Flatiron Institute에 가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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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13, 2023

2023년 새해 목표들

- 말끝을 흐리지 않고 문장을 명료하게 끝맺도록 연습하기
: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은 종종 받는데 조음이 원활한 편이 아니어서 발음이 웅얼거리고 말끝을 흐리다 보니 그걸 깎아먹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일단 말을 시작한 다음에 문장을 명확히 정리하려고 수습(?)하다보면 문장이 꼬이게 된다. 내가 느끼기엔 테크니컬하게 개선이 가능한 문제 같은데, 남들이 보기엔 태도와 자신감의 문제로 보일 테니 분명히 개선이 필요할듯. 최근에 이걸 어느 정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1) 말할때 입을 크게 벌리고 (2) 문장의 얼개를 미리 생각해둔 다음에 말하고 (3) 옛날 서울사투리를 흉내낸다고 생각하고 말하면 된다.

- 논문 하나 억셉시키고 하나 이상 초안 완성하기
: 초안 작성해 둔 논문은 교수님께서 내용적으로는 고칠 게 크게 없고 셀링 부분 위주로 첨삭을 해 주겠다고 하셨다. 첫 논문인데 많이 늦어져서 초조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일은 지금까지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좀 빨리 해서 올해 안에 완성하면 좋을 것 같다. 내년쯤 되면 논문 내는 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보람차지만 일상적인 일로 느껴지게 되면 좋겠음.

- 타 기관 대학원생 혹은 교수님과 협업 계기 마련하기
: 우리 연구실 학생 중에 현재 혼자서만 일하고 있는 건 나뿐이다. 물론 교수님께서 국내 학술행사에서 포스터 발표 같은걸 해볼 기회는 정말 많이 주시긴 했으나, 거기서 지속적인 협업의 계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타 기관 사람들도 내가 누구인지,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상태가 되어야 조금 더 학계의 일원으로 구체적인 소속감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 물론 협업이 지리멸렬해지거나 내가 원하는대로 안 흘러가면 그것대로 큰 스트레스일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협업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도 내 능력일 것이다.

- 이론물리 스터디
: 지인들에게 우리 분야를 소개할 때, 내가 주로 사용해온 방법론은 '이론물리 중에서 비교적 쉽고 새로운 것'이라고 늘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훈련받은 물리학도라면 알아야 하는 advanced된 이론들에 대해서도 늘 갈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상반기에는 우리 교수님의 '상전이와 임계현상' 강의록이랑 Critical dynamics (Täuber)를 볼 계획이고, 하반기에는 linear response theory (그냥 David Tong 렉쳐노트로 간단히) 랑 path integral (Chaichian) 을 공부할 예정이다. 사실 구체적으로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보니 늘어질려면 끝없이 늘어질 수 있어서 궁금했던 질문거리들 위주로 지혜롭게 공부해야 될 것 같고, 내가 건의해서 만든 우리과 원생 단톡방에서 이런 스터디를 모집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 글 쓸 계기를 마련하기
: 인문사회학뿐만 아니라 우리 물리학분야 쪽 대학원생들 중에서도, 대학원생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크고작은 잡지 혹은 웹진에 기고를 하거나 도서 번역 같은 것에 참여하는 경우가 더러 있던데 어떻게 기회를 얻는지 궁금하고, 그런 일에도 언젠가 참여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근데 기고의 기회를 얻을 만한 나만의 컨텐츠나 인지도가 현재 없는 게 사실이니까... 지금 당장 부러워하면서 억지로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학위 취득의 과정에서 내 컨텐츠를 만들면서 긴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 그 외
: 과학철학 스터디, ML 스터디도 느리지만 꾸준히 하기
: 여기저기 분산된 개인 자료들을 노션 중심으로 모두 통합하기
: 독서, 영화, 음악감상 및 노션에 기록
: 오래 못 본 사람들 약간 어색하더라도 연락해서 밥 먹으면서 인연 유지하기

Tuesday, January 10, 2023

존 홉필드(J. J.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 소식

이번 볼츠만 메달의 수상자 중 한 명이 존 홉필드(J. J. Hopfield) 교수님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볼츠만 메달(Boltzmann medal)은 루트비히 볼츠만의 이름을 따서 STATPHYS 학회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가장 큰 상이다. 이번 시상은 작년에 도쿄에서 열렸어야 하지만 올해로 미뤄진 STATPHYS 학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홉필드는 associative memory를 구현한 Hopfield network의 제안자로, 이렇듯 창발적, 집단적 학습기계로서의 뉴럴 네트워크에 대한 초기 기여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무척 유명하다. 제일 많이 인용된 PNAS 논문은 현재 25000회이며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통계물리학자 출신으로, 초기 커리어에서는 exciton 등등 고체와 전자기장의 상호작용 쪽에도 업적이 있다. 또한 확률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해야 하는 세포생물학적 과정(DNA 복제 등)에서의 동적 오류 수정 (kinetic proofreading) 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번에 우리 연구실에서 지원한 과제가 DNA 오류 수정을 비평형 열역학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보니 바로 이 kinetic proofreading과 관련이 있을 예정이라, 이쪽으로 문헌들을 조사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서로 꽤 달라보이는 이들 각각의 분야에서, 수천 회 인용된 논문들을 수십 개 이상 가지고 계시니 (h-index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구글에 검색해 보면 77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것 같다.

홉필드와 함께 수상한 Deepak Dhar 역시 매우 유명한 분이다. 통계물리학의 타 분야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교양서적 등에서 '자기조직화 임계성 (스스로 짜인 고비성, self-organized criticality)'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임계현상이란 계가 완전히 랜덤하지도 않고 완전히 질서있지도 않은 경계 부근에서 나타나는, 인풋 변화에 대한 응답 계수가 발산하는 등의 흥미로운 현상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복잡계라고 부르는 여러 시스템들은 간단한 동역학적 규칙에 의해 계가 스스로를 임계점 근처로 이끌곤 하며 이를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라고 한다.

이는 초기조건을 매우 민감하게 마련해두지 않아도 계가 알아서 그러한 복잡성을 보이도록 진화한다는 것이라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자기조직화 임계성이 처음으로 보고된 시스템 중 하나인 BTW sandpile에 대해 이론적인 분석을 한 것이 Dhar의 대표적 연구이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 볼츠만메달의 두 수상자인 홉필드와 Dhar의 연구가 엮일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뇌가 효과적인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criticality 주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인 critical brain hypothesis가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뇌는 발생 과정의 산물이며 미니멀한 룰들의 연결로 이뤄진만큼 자기조직화 임계성의 예시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딥러닝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자기조직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뉴럴넷의 weight 값들이 상전이의 경계에 있을 때 정보 전파의 깊이가 발산하므로 학습이 잘 이뤄진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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