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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16, 2022

최무영 교수님의 비평형통계역학 특강 TA를 담당한 소감

교양과학서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중학교 때 인상깊게 읽고 자기소개서에도 쓰고 그랬었는데, 10년쯤 지나서 이번 학기에 최 교수님의 '응집물질물리특강 1 (비평형통계역학)' 수업조교를 맡아서 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 과제물을 일일이 살펴보신 뒤에 조교에게 채점하게끔 주시는데, 이번에 마지막 과제 받으러 찾아뵐때 책을 가져가서 싸인을 받아도 되는지 여쭈었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몇번 개정이 되고 표지도 바뀌어서 이제는 아마 구하기 힘든 판본일게다.


당시 내가 구입할 때 아버지도 같이 사 읽으셨어서, 싸인 받는다고 하니까 같이 갖고 가서 받아오게끔 부탁하셨다. 아버지는 이과 전공은 아니지만 수학도 내게 고등학생 초반까지 한 수 가르쳐 주셨을 정도로 워낙 잘하시고 했다보니 이런 과학쪽에도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으시고, 당시에 내가 물리학 관심있어 한다니까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서 사 읽으셨던 것 같다.


다른 물리학자 교수님들과 최교수님이 공저하신 신간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도 마침 오늘(!) 출간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도 교보에서 사서 가지고 가려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학교 교보에는 아직 입고가 안 되었더라. 자서전 느낌인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수업 얘기를 좀 해 보자면, 인문대 수업에서는 현실 정치사회에 대한 튀는 말씀도 꽤 자주 하신다고 하는데 (그러한 내용들이 종종 등장하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또한 요즘으로 따지면 '인문사회계를 위한 물리학'에 해당하는 수업에서 강의하셨던 걸 다듬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는 박사과정 특강 수업이다 보니 철저히 전공내용 위주로 진행을 하셨다.


그래도 가끔씩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과학지식의 인식론적 기초, 사회구성적 성격 같은것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시는데 교수님의 견해만을 바탕으로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해당 학계의 여러가지 설을 소개해주시는 식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견해 형성 방식을 갖고 계시다고 느꼈다.


특히 미시적인 대상들과 규칙들의 동역학이 실재에 가깝고 통계역학은 그것들로부터 유도될수 있어야 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물리학도 특유의 환원주의적 도식이, 반드시 맞는건 아닐 수 있다는 말씀도 재밌었다. 우리는 현상의 설명에 가장 유용한 이론적 틀을 골라서 적용하는 것일 뿐이고, 단단한 실재라고 믿어지는 것들도 마찬가지인 것.


이건 내가 시스템의 미시적 디테일이 irrelevant해지고 '근본적으로 거시적인' strict한 법칙들이 등장하는 universality class 같은 걸 보면서 했던 생각들과도 그 결이 비슷했다. 여하튼 소박한 환원주의에 대한 그런 의심은 언뜻 들으면 다소 신비주의적인 계기를 갖는 것으로 오해될수 있으며 한때 '신과학' 등의 구호 하에 지나칠 정도의 총체성에의 추구로 물리학자들을 이끌기도 했지만, 최 교수님은 한때 유행했던 그런 것들과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신 걸로 알고 있고, 해당 언급 역시 철저히 인식론적 문제의식이라고 생각된다.


뭐 모두 중요한 얘기들이지만 사실 여담들이고, 전공 내용 자체에 대한 최 교수님의 강의 실력 또한 두말할필요 없이 명불허전이셨다. 학기 중후반부에는 진도 때문에 너무 급하게 진행했는데 이것이 상당히 아쉽다.


물리 교수님들의 강의 방식을 내 마음대로 두 가지로 나눠 보자면 대단히 심오하고 미묘해보이게 설명하는 방식과, 최대한 클리어하고 담백하게 해설해서 아우라를 부수는 방식이 있다. 들어본 수업 중에는 김석 교수님이 대표적으로 후자 쪽이었다. 최 교수님 수업의 경우 관점은 기본적으로 전자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그 미묘한 것들조차 단순히 말로 하는게 아니라 정확한 이론적 statement들로 풀어내셔서 오히려 후자에 가깝게 느껴지는 탁월한 강의였다.


이번학기를 끝으로 퇴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명예교수 되시고 나서도 기회가 되면 강의를 열어주시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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