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중간평가(?)에 이어, 워크숍이 다 마무리되고 나서 이번 워크숍에 대한 소감을 다시 정리해본다. 일단 각 분야 내용에 대한 생각은 뒤쪽으로 밀어두고... 내 관심분야 내지는 성향, 그리고 연구라는게 대체 무엇인지 등과 관련된 추상적인 잡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 얘기부터 써보겠다.
워크숍 내용과 직접 관련된 얘기는 아닌데 듣다보니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일단 나는 마음에 드는, 멋있다고 느껴지는 이론체계 내지는 사고방식 같은 게 있으면 거기에 꽂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걸 어디에 적용해볼수 있을지, 적용되는 사례가 있을지 찾아보고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니 내가 떠올리는 토픽들은 주로 내가 좋아하게 된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으니 해본다' 정도지, 현재 쟁점이 되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 이런 느낌이 아닌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과학도로서 가지는 건전한 태도인지, 그리고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태도인지 걱정이 든다는거다. 반대로 비전, 목표에 대한 관심은 있는데 방법론 자체에서 재미를 못느낀다면 그건 오히려 더 고충이겠다 싶기도 하고. 하여튼 두 계기 사이에서 균형잡힌 변증법적 발전이 중요하지 않겠나.
예컨대 소프트매터 시스템도 현재로서는 특정 생체현상을 가능한 미니멀한 원리들로부터 규명하고자 하는 목적 그 자체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는 이론 혹은 사고방식이 주로 그런 시스템들에 멋있게 적용이 되고 어느정도 설명을 하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것에 가깝고... 정보기하 공부하다가 연장선상에서 보게 됐던 thermodynamic geometry 역시 포말리즘은 무척 마음에 드는데, 정작 그것들이 trivial하지 않게 적용된 논문들을 보니 팔자에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아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긴한) 블랙홀 같은 무서운 것들이 튀어나왔었다. 요컨대 난 관심 방법론이 핵심적으로 역할을 하고있어서 따라가보면서 연습해볼수 있는 논문이면 관심대상들이 너무 저세상이더라도 따라가볼 의향이 있는데, 그런 취향이 계속된다면 말그대로 흥미본위의 공부일뿐 한정된 시간에서 너무 소모적이지 않겠나 싶은것.
공부뿐만 아니라 연구에서도 그렇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할수 있으니까 해보는' 연습문제식 연구들은 그 과정이 재밌을지라도 그 결과가 정말로 큰 임팩트를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점 역시 느끼고 있다 (사실 물리과 학사졸업논문도 그렇게 습작식으로 주제를 선정해서 썼다). 그래도 누군가 했을 법도 한데 딱히 어디도 없는 계산들은 논문 부록에 써놓으면 citation이 꾸준히 생기긴 하던데... 하여튼 결국 이런것들이 쌓여 최신의 쟁점들에 대한 시야도 넓어지고, 시야가 생겼을때 그걸 실현해낼 맷집도 생기는것 아닌가 싶긴 하다. 그렇다고 무지성으로(?) 쌓아서는 안되고 일부러라도 능동적으로 생각을 그런쪽으로 끌고 가야 하는것 같다. 내 재미를 위해서 사회적 자원을 끌어써도 되는게 대학원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그걸 위한 책임의식과 셀링이 당연히 필요한것이고, 꼭 책임의식이 아니라 철저히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연구사적 맥락과 스토리는 확실히 잡혀야지.
하여튼 이번 워크숍에서 잘된 연구 혹은 잘된 발표들을 들어보니 이런 두가지 측면(방법론과 문제설정)의 상호작용이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보도자료 등으로 이미 익숙한 카이스트 김재경교수님 연구가 그랬는데, 수학적으로도 흥미로운데 그걸로 해결하려는 문제들이 엄청나게 실질적이고 중요한 것들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우리교수님 발표도 그랬고 나도 이를 뒷받침하는 더 훌륭한 대학원생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께서 바빠 보이시더라도 이런 애매한(?) 주제도 말씀 꺼내보면 은근히 좋아하시더라는 얘기도 있었으니 혼자 고민하지 말고 자주 말씀을 나눠야겠다 (특히 얼마전 구두자격시험의 방향설정과 관련해서 오랜만에 이런느낌의 고민?을 말씀드렸었는데 굉장히 잘 답해주시길래...).
다음은 내용적인 얘기 (간단히만). 일단 플랫밴드라는 토픽이 있었는데, 흔히들 고체물리에서 하듯이 운동량공간에서 밴드를 그리는데 그 밴드가 평평하게 생긴걸 플랫밴드라고 하더라. 지저분한 현상들이 사라지고 우리가 원하는 재밌는 현상들이 깔끔하게 잘 나타난다?는 느낌같은데 잘 이해를 못했다. 고체물리는 어렵다.
그 다음 주제는 population dynamics, game theory 쪽이었다. 이건 내용 자체보다는 그냥 이걸 보다가 내가 예전에 했던게 생각나서... 뭔고 하니 최적제어이론 수강했을때 했던 기말프로젝트다. 그때는 높았던 수업난이도를 잘 못따라가서 그냥 쉬운버전(?)의 최적제어 했던거라 부끄러움밖에 없었는데, 다시 열어보니 내용이 나름 생각해볼게 많다. 뭔고 하니 죄수의 딜레마를 연속적인 동역학으로 확장한 모형인 CAIPD에서, autonomous하게 두고 관찰하는게 아니라 플레이어 한명한테 인풋을 줘서 상대방한테 능동적으로 밀당을 해보겠다는 거였다. 최종적인 협력도가 전반적으로도 높아야 하고, 나랑 상대방의 협력도 차이가 너무 크면 한쪽이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런 상황도 피하는 쪽으로 비용함수를 짰던 건데 이게 인간관계에 analogy가 꽤 되는듯해서, 연습 겸 강화학습 같은걸로도 해보고 랩 내부에 가끔 있는 취미발표시간(?)같은 데서 소개해 볼까 싶다.
양자 다체계에서의 ergodicity 연구는 지난번 글에 썼으니 생략하고,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건 quantum heat engine 쪽이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무척 재밌었다. 관측 scheme에 따라서 일의 확률분포 개형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이, 양자적 효과라는 게 어떤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고... 만약에 생체계에의 적용보다는 펀더멘탈한 열역학 쪽을 할거라면 이런 쪽으로도 언젠가는 반드시 involve될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무엇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기서 사용하는 이론들이 꽤 간지가 난다(...)
마지막으로 물리 외적인 걸로 돌아와서 끝맺자면... 줌에서와 달리 오프라인에서 하니까 사람들과 직접 말씀나눌 기회도 살짝씩 있는 게 좋았다. 특히 학부시절 정하웅교수님 연구실에 몇번 나갔을 때 그곳 학생이셨던 박사님들께도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고 연구 얘기도 해봤다. 기관과 호텔 모두에서 방역과 안전에도 정말 많이 신경쓴 티가 났는데 사실 꼭 이렇게 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프라인의 장점은 분명히 있는거구나 하는걸 체험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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