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거의 끝나 가는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보면 돌고 돌아 물리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 커다란 계산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풀어서 확인을 하고 그것들에 해석이 부여될 때마다, 혹은 어릴 때 교양과학서적에서 읽었던 내용이 실제 이론적으론 이런 거구나 하고 약간이나마 알게 될 때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음.
또 하나 느낀 점은 물리과 고급 이론과목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도 결국 수렴진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주변이랑 얘기 나눠 봐도, 학기 중반쯤 되니까 서로 다른 과목인데도 다들 비슷한 걸 배우고 있어서 웃길 때가 많았고... 양자장론, 상전이, 다체계, 응집특강 모두 교집합이 꽤 많다. 이건 다른게 아니라 그냥 현재로선 결국 물리를 기술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진전된 언어가 장론이어서 그런것 같음.
다만 이번 학기에 내가 들은 수업들의 경우엔 Lorentz invariant한 이론들을 다루진 않았고 전부 시간과 공간을 따로 취급하긴 했다. 작년 양자장론 1은 상대론을 기본으로 깔고 가서 거의 제대로 못 따라갔는데, 지금은 장론의 기본적인 언어도 익혔고 일반상대론 수업에서 상대론의 언어도 익혔으니, 그때 내용을 지금 다시 본다면 좀더 수월하게 따라갈수 있을 듯.
대학원 초반에는 통계물리 분야는 다른 물리 분야랑 뭔가 아예 따로 논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요새 새롭게 다루는 대상들(네트워크, 생체, 머신러닝 등)이 물리학의 전형적 주제들과 살짝 따로 놀아서 그런거 같고, 이론적으로까지 그렇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내공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음.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통계물리가 다른 분야랑 심하게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엄청 신기한 일이기도 함.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있는 거시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론(통계역학/통계장론)이, 그 입자들 한 두 개의 미시적인 상호작용 규칙을 다루는 이론(양자장론)이랑 출발점도 관점도 질적으로 아예 다른데, 결국 형식적으로 비슷하게 된다는거니까.
하여간 이론물리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을 너무 모르다 보니, 그런걸 채워가면서 물리학도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자는게 이번학기 목표였다. 실제로 학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좀더 통합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학부시절에 전기과에서 신호처리 쪽 공부하면서 훈련받아서 델타함수, 푸리에변환, 복소적분 등을 잘 다루고 재밌어하는 게 내 부심(?) 중에 하나였는데, 고급 이론과목을 듣다보니 그런 것들은 기본 중에 기본소양으로 늘 깔려있는 느낌이다.
아주 구체적인 계산을 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만으로 합리적으로 아귀가 맞으면서 올바른 물리를 주는게 되게 재밌다. 정확히 말을 못하겠는데 인과성, 동일성 같은 엄청 중요한 것들이 이런 계산들 속에서 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unphysical한 것들은 늘 절묘하게 제거가 됨. 암튼 내용적인 흥미나 직업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런 계산기법들을 늘상 다뤄볼수 있다는것도 공부의 데일리한 즐거움이겠다.
암튼 방학때는 작년에 너무 어려워서 던졌던 장론 수업 자료가 시스템에 남아 있으니 그걸 다시 공부해 보고, 이번 학기 수업 내용 중에서도 진도 나가느라 바빠서 상세한 예시 못 들어주셨던 걸 스스로 채워보고 하면 될 듯하다.
타과 출신이라는 것은 더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만큼, 일찍부터 공부 충실하게 한 동료들에 비해서 현재 내가 이해하고 활용할수 있는 이론의 폭은 정말 새발의 피도 안될 거라서 늦게나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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