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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15, 2026

MOF와 나노테크: 다학제 분야로서의 구획과 그 과학기술사회학

2025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주제인 MOF(금속-유기 골격체)에 대해 뒤늦게 조금 접할 기회가 있었다.

MOF는 1g 안에 축구장 몇개 넓이의 표면적이 있는 새로운 종류의 물질군이라고 한다. 프랙탈을 소개할 때 유명한 '해안선'의 예시에서 보듯이 표면적이라는 것도 측정하기 나름이지만, 아마 분자~고분자 크기 입자들이 얼마나 달라붙을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말하자면 유효 반응 단면적(?) 같은 것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닐까 싶다.

근본적으로 다학제적이며 그 경계도 조금 모호한 나노과학이라는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을 꼽자면 아마도 리처드 파인만의 "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 즉 "바닥에는 아직 충분한 공간이 있다"일 것이다.
내가 영어 native 화자가 아니어서 정확하진 않으나, 여기서 room이 말하는 바는 아마도 '공학적 엔지니어링을 할 여지와 기회의 크기'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 room을 그게 아니라 literally 물리적 공간의 크기로 생각한다면,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와도 같은 MOF가 바로 위 격언에 매우 잘 어울리는 예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나노테크에 해당한다고 간주되는 여러 분야 및 대상들을 가장 넓게 묶어주는 특징은, 바로 전기적, 기계적, 재료적 성질 중에 둘 이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 아닐까 한다. 물론 이는 나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이라서 부정확하거나 예외가 있을수 있다.

내가 한때 관심 가졌던 과학기술학적 문제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것울 과연 '분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강령 하에 전개된 운동(movement)에 가깝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나노테크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명백히 movement에 가까워 보이는 사이버네틱스에 비해 나노테크는 훨씬 더 '분야'에 가까운 듯하지만, 파인만의 유명한 격언과 몇 가지 계산들에 의해 주목받고, 에릭 드렉슬러가 큰 그림을 제시한 저술 《창조의 엔진》이 대중적으로도 히트를 치고 관료들에게도 어필되면서 미국 과학정책에 의해 드라이브가 걸린 일련의 구체적 과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 실제 나노테크의 실현은 드렉슬러가 제시한 경로대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혹은 드렉슬러의 구상이 애초에 원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본 바 있다. 과학사적/과학사회학적으로도 살펴보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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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20, 2025

하버드 물리학과 한국인 교수님들과의 인연 아닌 인연

이번에 삼성 종합기술원(SAIT) 원장으로 오신다는 박홍근 교수님은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계신 한국계/한국인 교수님 4인 (김필립, 박홍근, 정수연, 노승한) 중 한 분이시다. 공교롭게 4인 중 내 입장에서 유일하게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잘 모르고 직접 뵌 적도 없는 분이라서 궁금했는데, 이번에 한국과 인연이 다시 생기게 되셨다. 원래는 화학자에 가깝게 트레이닝받으신 것 같지만 분야가 나노과학 쪽이다 보니 화학/물리학 구분 크게 없이 그룹 내에서 퀀텀, 생체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하시고, 소속도 화학과, 물리학과 양쪽에 되어 계시는 모양이다.

수 년 전에 Sompolinsky의 포닥 제자이자 저명한 신경과학/AI 학자인 Sebastian Seung을 삼성리서치에 영입했던 것처럼, 삼성그룹이 미국에서 융합적인 STEM 연구를 하는 한국계/한국인 교수를 연구 조직 임원으로 모시는 인사를 가끔 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인사는 앞으로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하다.

하버드에 계신 다른 세 분과의 인연 아닌 인연도 말해보자면...

- 김필립 교수님: 그래핀 및 위상부도체 관련 업적으로 워낙 저명한 세계적 학자이신데, 2013년 한국 KAOS재단 <공간, 위상, 물질> 토크 콘서트에서 박형주 교수님, 김민형 교수님과 함께 그래핀에 대해 강연하실 때 직접 보러 갔고 질문도 했었다. 그때는 난 고등학생... KAOS재단은 물리학과 출신인 인터파크 이기형 창업자가 출연한 과학문화 관련 재단인데, 2012년 출범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내가 갔던 <공간, 위상, 물질>이 아마도 굉장히 초창기 행사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 노승한 교수님: 우리 비평형 통계물리 분야의 연구자이시고 현재 세부전공(active matter)까지 동일해서 서울대에서나, 국제 학회에서나 꽤 자주 뵙는다.

- 정수연 교수님: 이 분도 맨 위에 언급한 Sebastian Seung처럼 신경망의 통계물리학 쪽 대가인 Haim Sompolinsky의 포닥 제자이시고, 통계물리 기반으로 인공신경망 및 실제 뇌에서의 neural representation과 그 성능을 정량화하고 응용하는 쪽 일을 하신다. 23년경부터 정수연 교수님의 논문들에 관심 갖기 시작해서 공부해 뒀다가, 지난 여름에 고등과학원에 강연을 오실 때에 미리 이메일 드려서 강연 끝나고 잠깐 말씀 나눴는데, 내가 말씀드려 본 것들(hierarchy / category / compositionality 등)이 모두 좋은 아이디어이고 좋은 연구 방향이지만, 대부분 교수님 그룹에서 이미 최근에 하고 있고 곧 결과가 나올 거라고 하셔서 뿌듯하면서도 아쉬웠다. 여담으로, 물리학과는 아니지만 함돈희 교수님이라는 분도 하버드에 계시는데 (만28세에 하버드 교수가 되신 것으로 유명), 내가 입학하기 전인 2013년 여름학기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방문해서 '양자역학의 응용' 강의를 하셨는데, 1-2년 넘게 지나도 몇몇 선배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굉장히 강의가 좋았던 모양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Sunday, November 12, 2023

깁스 역설: 개수를 세서 물리학을 하기, 그리고 측정의 형식에 알맞게 생각하기

고등학교 때 했던 생각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사과의 개수를 세는 것'을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의 전형적인 예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굳이 따지면 사과의 개수를 세는 것은, 자연수라는 형식체계를, 이산화하기 쉬워서 자연수로 잘 기술되는 사과라는 현실세계의 대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엄연히 가장 원초적인 '물리학'에 해당하는 것 같다.

물론 수학교육에서 현실 예시를 들어가면서 하는게 학습에 중요하다거나 하는 게 있을 테니... 사과의 개수 세기를 진짜로 과학교과서로 옮겨야 된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머리속의 농담 같은 관념적 재분류일 뿐이다.


그런데 사실 내 전공분야인 통계물리학 또한 결국에는 개수를 세는 것이다. 시스템의 디테일에 크게 상관없이 개수만 잘 세어도 꽤 많은 물리적 성질들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

물리학이라고 하면 뭔가 시공간 위에서 연속적인 것을 다루기 위해 미적분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개수 세는 것만으로 물리를 할 수 있다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그 spirit은 사과의 개수를 세는 원초적인 물리학에서부터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통계물리학에서는 대상의 개수를 세는 게 아니라 그 대상들의 배열이 이루는 state의 개수를 세는 것이므로 조금 더 추상적이기는 하다.


이게 공연히 오랜만에 다시 생각난 이유는, 요새 지인에게 Gibbs paradox를 공부해서 소소하게 가르칠 일이 있어서, 개수를 세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그랬던 것이다.

Gibbs paradox는 입자들이 이루는 상태의 개수를 셀 때 입자 종류의 구분불가능성 (쉽게 말해 순열permutation을 조합combination으로 바꿔주는) 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두 종류의 기체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섞일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지 여부와 관련된 paradox of mixing과도 궁극적으로 동일한 문제인데, 생각할수록 이상한 점들이 많아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굉장히 흥미롭다.

이에 대해 내가 통계역학을 여러 해에 걸쳐 접하면서 나름대로 고민해서 가지게 된 결론의 얼개가, Jaynes라는 물리학/통계학/정보이론 쪽에서 유명한 분의 견해와 거의 같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어서 꽤나 뿌듯하기도 했다.


그 결론을 대략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입자들이 구분불가능한지 여부를 다르게 생각했을 (think different) 뿐인데 엔트로피라는 물리량이 바뀌는 (physics does change) 것은 굉장히 이상해 보인다. 예를 들어 까만색 입자와 흰색 입자를 우리가 구분해서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두 종류의 입자들이 섞일때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근데 구분 안하고 통째로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서로 섞여도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않는다. 엄연히 객관성을 기해야 하는, 그리고 실험으로 측정이 가능한 physical quantity인데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니? 이게 우리가 흔히 역설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일테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구분불가능 여부를 전적으로 임의로 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시스템을 관찰하는 device의 해상도 내지는 형식에 따라서, 구분가능성의 여부는 어느정도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그 세팅 하에서 physical quantity의 측정값을 설명하는 가장 유용한 effective theory가 무엇인지도 정해진다.

단, 이때 주어진 해상도 내지는 형식 하에서 입자의 종류에 대해 얼마든지 얻을수 있는 정보를 일부러 무시하면 안되고 최대한 다각도로 조사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think'와 'physics' 외에도 'probe' 라는 새로운 층위가 들어오게 되고, 여기서 'probe different' -> 'physics does change' 는 비교적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think 부분은 어떻게 되는 건가? 내 생각에 'think'를 완전히 임의로 할 수가 없고 우리가 가진 'probe'의 형식에 알맞게 올바르게 think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이론은 우리가 가진 probe 상에서의 올바른 physics를 준다. 그리고 probe가 바뀌면 그에 맞게 physics가 바뀌는 것 같다.



예컨대 나는 만약에 원자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붙이고 그것들의 운동을 일일이 쫓아갈수 있다면 열heat은 모두 일work이 되고, 우리가 흔히 보는 스케일에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23개 기체 입자에 서로 구별되는 이름을 붙이려면 최소한 원자 76개 길이의 binary sequence 꼬리가 필요하고... 그런데 충돌 전후에도 그 꼬리표가 안 파괴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꼬리표의 크기가 훨씬 커야 할 것이고...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왠지 저런 일이 근본적으로 forbidden되는 이유가 있을 듯. 아닐 수도 있고 말이다)

또한, 두 종류의 기체 입자가 서로 무게가 다르다거나 (심지어 고전적인 공(ball)들인데 색깔(!?)이 다르다거나) 해서 혼합 전후에 물리현상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실험해 보면 그 차이는 측정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일부러 무시하고 구분불가능하다고 하는 건 wrongly think different하는 것 같다. 이것은 다름아닌 mixing paradox로서, 바로 위 문단에 말한 예시보다 조금 더 미묘한 듯하다.


Gibbs paradox로 돌아오면, 자유 공간을 떠다니는 이상기체 분자들에서 엔트로피를 1/N! 으로 나눠 주는 게 양자역학적 입자들의 구분불가능성 (identical particles) 때문이라고 하는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일단 눈에 보일 정도의 기체 덩어리는 완전히 thermalize 되어 있고 전혀 coherent하지 않을 텐데 양자적 구분불가능성이 과연 relevant할지 살짝 의문이기도 하거니와 (이부분은 그냥 내가 양자를 잘 몰라서 그런 듯), 사실 꼭 coherent한 wavefunction으로 기술되는 양자역학적 입자가 아니더라도, 입자의 종류 차이가 우리가 가진 device에서의 measurable physics에 영향을 안 준다면 얼마든지 구분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럴 때에는 양자역학적 입자들과 마찬가지로 계산상으로도 구분을 안해주는 게 맞는 듯하다.

원자나 분자 같은 기본 입자들의 살짝 특별한 점은, 축구공이나 농구공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조금씩은 다른 일상 속 거시적 물체들과 달리 (애초에 그런 물체들이 따로따로 떠다니면서 10^23개씩 모여 있을 수 없기는 하지만) 정말로 fundamentally identical해서 probe의 해상도에 무관하게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

물론 극히 최근에는 Gibbs paradox를 resolve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일본의 Shin-ichi Sasa 교수님의 연구팀에서 2021년에 Journal of Statistical Physics에 게재한 논문(Quasi-static Decomposition and the Gibbs Factorial in Small Thermodynamic Systems, 링크)을 비롯한 대안적인 논변들도 있다. 이 부분은 잊어버려서 한번 더 살펴봐야겠다. 아무튼 이런 게 아직도 연구 중인 open question이라는 점이 인상깊다.


이렇듯 개수를 어떻게 셀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문제가, 비가역성과 열역학 제2법칙의 근원이라는 통계역학의 가장 근본적이고 머리아픈 문제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여담이지만 나는 현재 주목받는 딥러닝이 대체 왜 이렇게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도, 디테일을 제하고서도 고차원 공간에서의 counting을 통해 약간은 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근거가 되는 연구 리포트들도 있다. 통계물리학을 이용하여 딥러닝의 작동원리를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성공적 시도들이 꽤 많은 것도, 바로 이런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상상을 해 본다.

흔히 양자역학에서 관측 여부에 따라 물리가 달라지는 게 이상하다, 관측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Gibbs paradox 문제가 비가역성의 근원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을 비롯한 여러가지 통계역학적 고민들이야말로, 양자역학의 관측 떡밥에 만만치 않게 미묘하고 재미있으면서, 우리의 거시적이고 일상적인 고민들 (microstate와 macrostate를 정의하는 문제 -> 로또번호 다른 것들은 잘만 나오면서 123456은 왜 안나올까 등등) 과도 훨씬 깊게 연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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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31, 2023

[도서 소개]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 - 다슌 왕,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우리 비평형 통계물리 분야의 옆집인 복잡계 물리학 분야에서 이번에 교양서 번역이 새로 나왔다고 해서 공유해 봅니다.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 다슌 왕,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이은, 노다해 옮김, 도서출판 이김(2023).

도서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0778375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은 이 책의 제목이면서, 저자인 Dashun Wang이 연구하는 '분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학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광의의 메타과학 내지는 과학학으로서 과학인문학(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과 공통점이 많이 있으나, 과학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인문사회학이 아니라 네트워크 과학을 필두로 한 복잡계 과학 및 데이터 사이언스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과학인문학과도 방법론적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h-index 등을 비롯한 과학 연구 실적지표를 제안하고 개발하는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과는 어떤 관계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저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Reka Albert, 정하웅 교수님과 함께 인터넷 연결망의 구조 분석, 신진대사 네트워크 분석 등으로 scale-free network라는 개념을 데뷔시킨, 네트워크 이론 및 복잡계 물리학 분야의 거장이기도 합니다.

주로 네트워크 분석 방법으로 사회 동역학과 다양한 사회현상을 연구하시는 이은 교수님과, 역시 네트워크이론 전공으로 과학대중화 및 커뮤니케이션에 힘쓰고 계시는 노다해 선생님이 번역을 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제너럴한 독자뿐만 아니라 과학을 업으로 삼는 연구자들이 얻어갈수 있는 팁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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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28, 2023

양자장론 스터디 계획: 대칭성과 물리법칙, 장론적 기술방법

이론물리학의 변방에 있는 비평형 통계물리를 전공하면서, 내 세부전공 외의 이론물리를 잘 모르는 게 늘 컴플렉스였다. 정작 수업 들을 때는 잘 못 따라갔으면서 최근에 늦바람(?)이 든 덕분에, 양자장론의 이론적 구조를 늦게나마 취미삼아 살펴보기로 했고 그 예비로서 고전장론을 대강 보고 있다.

구체적인 모티베이션 없이 막연한 흥미로 공부할 때보다, 그 동안 물리덕질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가지게 된 물리학에 대한 전체상, 그리고 여러 수업에서 파편적으로 배운 개별 사실들을 바탕으로 해서 '꼭 알고 싶었던 질문거리'들을 몇 가지 정해두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니까 훨씬 빠르고 수월한 듯하다. 그 중심 질문거리들은 주로 대칭성이 물리법칙을 제약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와 관련되어 있다.


먼저 장론의 라그랑지안 역학체계로의 기술방법에 익숙해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서, 고전적인 장의 대표 예시로서 진동하는 1차원 끈의 역학에 대한 연속체 라그랑주 역학을 살펴보고 국소적 보존법칙들을 얻는다. 그 다음에 라그랑지안 기술방법에서 장 자체의 변환(게이지 변환 등)과 좌표 변환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뇌터 원리를 바탕으로, 위의 보존법칙들을 연속변환에 대한 대칭성과 일반적으로 관련지어 다시 수립한다.


고전장론에서 살펴본 두번째 주제는 전자기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기존에 전자기학에서 학습한 elementary한 표기 방법에서도 로렌츠 게이지를 택하면 SR compatibility가 이미 시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맥스웰 방정식, 전하량 보존을 나타내는 연속방정식 등이 민코프스키 계량을 끼고 있는 4-벡터 표기법에서 시간과 공간이 동등하게 보이는 매우 간결한 형태로 Lorentz covariant하게 표현된다. 알려진 전자기학 법칙들에서 시간과 공간이 함께 등장하는 물리현상들은 뉴턴의 고전역학처럼 굳이 특수상대론을 따로 도입해서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특수상대론에 부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특히 게이지 변환에 대해 field들이 불변이려면 전기퍼텐셜과 벡터퍼텐셜의 변환규칙이 특정한 관계를 만족해야 했는데, 게이지 변환의 이러한 형태 역시 4-벡터 표기법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합쳐서 쓸 수 있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로렌츠 공변인 표현 상에서 전자기장의 게이지 불변성을 증명해 본다.
다음으로는 전자기장의 라그랑지안 기술방법을 살펴본다: 즉 주어진 라그랑지안이 최소 작용의 원리를 통해 맥스웰 방정식을 올바르게 준다는 것을 살펴본다. 이러한 라그랑지안 기술방법에서 뇌터 원리를 적용하면 전자기 에너지 밀도에 대한 국소적 보존법칙을 얻는다.
또한 거시적 하전입자와 어떤 벡터퍼텐셜(맥스웰 방정식 등을 전제하지 않은)을 합친 액션을 로렌츠 공변하게 쓰는 것만으로 로렌츠 힘의 공식이 나오며, 라그랑지안이 로렌츠 공변인 스칼라여야 한다는 것에 더하여 게이지 변환에 대한 대칭성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몇가지 간단한 논리로 전자기장의 라그랑지안(즉 맥스웰 방정식)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을 밝힌다. 이렇듯, 변환에 대한 대칭성 요구조건만으로 물리법칙을 기술하는 구체적인 방정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공부한 범위 내에서는 일단 이 부분이 가장 하이라이트다.
이렇게 대칭성 요구조건에 의해 물리법칙이 제약되는 것은, 기존에 알려진 물리법칙의 필연성(?)에 대한 느낌을 갖는 것뿐 아니라, 일반상대론과 양자장론 등에서 아예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물리법칙을 얻는 데 대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졌으므로 가히 현대 이론물리학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는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전자기 퍼텐셜이 들어오는 방식 또한 4-벡터로 간결하게 표현됨을 살펴본다. 이때 전자기 퍼텐셜의 게이지 변환에 대해 이 시스템이 불변이려면 파동함수의 위상 또한 알맞게 변환되어야 함을 이해한다. 또한 이러한 슈뢰딩거 방정식 기반의 파동함수 기술방법이 언제 한계에 봉착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이 내용을 살펴보는 이유는 아래에도 쓰겠지만 디랙필드에서 전하량 보존을 논의할 때 게이지 변환에 의한 필드의 위상 변화를 고려해야 하는 등, 양자장론에서 나오는 개념들에 대한 예비로서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지난 일주일간 정리해본 결과다.

앞으로는 본격적인 양자장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먼저 이러한 진동하는 끈을 정준 양자화하여 bosonic field에 대한 비상대론적 양자장론을 얻고 경로적분 기술방법도 살펴볼 것이다. 또한 Klein-Gordon field와 같은 질량이 있는 장도 같은 방법으로 양자화해 본다. 다음으로 bosonic field의 교환자 관계를 반교환자 (anticommutator) 관계로 대체함으로써 고전시스템에 비유되기 다소 어려운 fermionic field도 기술해 보고 이로써 양자장론에 한층 더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다.

또한 응집물질 물리학에서 속도가 충분히 느린 입자들을 기술할 때는 이러한 비상대론적 양자장론이 실제로 유용하다고 알고 있는데 보조 교재를 통해 이것들의 구체적인 예시를 공부한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상대론적 양자장론을 살펴본다. 거시적 하전입자를 다루는 고전 전자기학에서 했던 것과 유사하게, Dirac field에서 로렌츠 공변성과 게이지 대칭성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quantum electrodynamics의 라그랑지안을 얻는다. 대칭성을 요구함으로써 기존에 알지 못했던 법칙을 얻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므로 검증이 필요한데, 이 이론을 통해 어떠한 주요 개별 현상들이 설명되는지도 기초적인 수준에서 알아두도록 한다.

또한 여기서 디랙 장의 위상 변환이 관여된 뇌터 원리를 통해, 게이지 변환에 대한 QED의 불변성에 대응되는 보존법칙이 다름 아니라 전하량 보존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또한 스핀 값이 교환자관계를 어떻게 제약하며 (spin-statistics theorem), 각 스핀 값에 대하여 어떠한 양자장론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으로 양자전기역학이 gauge theory로서 gauge boson을 가져야 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러한 게이지 보손이 전자기력의 '매개 입자'라고 불리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빛(전자기파의 양자로서의 광자)과 연결됨을 공부해 본다.

물론 아직 고전장론만 살펴본 상태이고, 공부해보지 않은 양자장론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질문거리들을 말이 되게 설정했는지조차 불명확하므로 이 개요 또한 향후 공부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이 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문제상황을 예측하기 위한 계산테크닉보다는 껍데기같은 주요 이론 유도 위주로만 빠르게 살펴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 걱정이긴 한데, 상술한 주요 질문거리에 답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한다. 전공 내용 관련 블로그가 반년 넘게 개점휴업 중인데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해보면서 다시 살려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양자장론에서의 기타 개별 토픽에 대해 살펴본다. 현재 생각으로는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주제들을 아주 대략적으로라도 한번씩 살펴보자는 느낌인데, 지금 관심이 가는 주제들로는 양자장론에서는 양자 얽힘이 어떻게 기술되며 어떠한 현상들이 존재하는지 알아보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론들에 topology가 들어오는 배경과 그 중요성을 이해해 보는 것 등이 있다. 또한 통계역학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conformal field theory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이해해 보고, 이와 관련된 가장 심화된 주제로는 중력이론과의 대응성도 살펴볼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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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23, 2023

세포 자동자와 능동 물질: 비교하고 접점을 탐색하기

콘웨이의 생명 게임으로 가장 잘 알려진 Cellular automata (세포 자동자) 에서는 그 규칙과 초기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멋진 집단현상들이 보고된다. 자기 혼자서만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패턴, 무언가를 계속 멀리 쏘아보내는 패턴, 마치 영양분이 충분한 균들처럼 무한 증식하는 패턴 등이 있다.

이러한 세포 자동자를 이산적인 격자가 아니라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S Rafler가 만든 SmoothLife와, Bert Chan이 만든 Lenia 등이 있다 (아래 그림). 이들은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되다 보니, 정말로 동글동글한 원시적 생명체처럼 생긴 것들이 서로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해서 구조를 이루는 등 무척이나 신기하다. 후자의 Lenia를 만든 Bert Chan의 경우 구글브레인 도쿄 캠퍼스에 계신 분이고, 지금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visiting하고 계신 듯하다.

expanded version of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 and expanded universe." (링크).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biology of artificial life." arXiv preprint arXiv:1812.05433 (2018)).


한편, 현재 내 연구 주제인 능동물질(active matter)도, 에너지를 소모해서 스스로를 평형으로부터 멀게 유지하며 자기조직화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집단현상들을 나타낸다. 이들이 그 상호작용 규칙과 파라미터 범위에 따라 보여주는 여러가지 패턴은, 어떤 순간의 물질 분포와 미리 정해진 동역학적 규칙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해지는 노이즈값에 따라서, 그 다음 순간의 물질의 밀도분포 (혹은 입자기반 모형일 경우 각 입자들의 위치) 가 정해지는 방식으로 업데이트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러한 능동물질은 세포자동자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지어질 수 있어 보인다. 둘 다 공간 속에서 외부 입력 없이 에이전트들끼리의 상호작용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자명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포자동자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패턴들이, 생각보다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능동물질 패러다임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탐구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야의 발전사와 관련된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그 가장 큰 이유는, 세포 자동자의 변화 규칙을 실제로 implement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구현가능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즉 능동물질은 어디까지나 물리학 모형이기 때문에 물질 혹은 신호가 국소적으로, 즉 한 점에서 바로 인접한 다른 점으로 잇따라 전달되어야 한다거나, 실제 물리계 혹은 생체계에서 구현 가능한 메커니즘이어야 하는 등 여러 제약들이 존재한다. 반면 세포자동자의 경우에는 세포가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것도 가능한 등, 업데이트 규칙의 설정이 능동물질의 경우보다 훨씬 자유로운 듯하다. 주로 컴퓨터 아트 및 정보과학의 문화예술 응용 쪽 (정확히 어떻게 묶어 불러야 할지 모르겠음. 아무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나, Bert Chan 같은 분들) 에서 그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을 많이 탐구하는 듯하다.

이 두 가지 분야의 잠재적인 접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할 것이다. 세포자동자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physics-grounded된 모형을 보거나, 아니면 반대로 능동물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능동입자들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자유분방하게 세팅해주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단순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변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일종의 intelligence를 개별 입자 수준에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에 해당하는 것을 지난번에 최승준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다 (물리학전공자 출신으로 미디어아트 쪽에 계시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적극 접목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DeepDream으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모드빈체프 (Alexander Mordvintsev) 는 그 이후로는 neural cellular automata라고 해서, 세포자동자를 마구 흩뜨려 놓은 상태에서 출발시켜도 원하는 이미지로 수렴하도록 상호작용 규칙을 학습하는 매우 신기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법한 초록색 도마뱀 그림이 바로 그거다 (Growing neural cellular automata: 링크). 이러한 neural cellular automata는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성적 산업디자인에 응용하기도 했다 (아래 그림).

Neural cellular automata를 이용한 모양 완성 (shape completion),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 (출처: https://iclr.cc/virtual/2021/poster/2914, Zhang, Dongsu, et al. "Learning to generate 3d shapes with generative cellular automata." arXiv preprint arXiv:2103.04130 (2021).



그런데 이 모드빈체프가 최근에는 세포자동자가 아니라 입자 기반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 동기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추측으로는 아마도 위에서 말한 내 문제의식대로, 단지 컴퓨터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물리계, 이를테면 살아있는 세포들 혹은 나노머신들로 실현 가능한 상호작용 규칙을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인공적/자연적 신경망 쪽에 인상깊은 기여를 하신 분들이 living matter 쪽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아서 신기하다. 지난번에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소식에 대해 포스팅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뉴럴네트워크는 결국 여러가지 패턴을 표현가능하고 심지어 일반화까지 가능한 커다란 비선형 시스템이다보니, 생체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쪽이랑 그 방법론적 출발점은 달라 보이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뭔가 비슷한 종류의 관심사로 분류되는 듯하다.)


다음으로 그 반대 방향, 즉 능동물질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sophisticated하게 디자인하는 방향을 보자. 예컨대 주변을 인식하고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운동 능력도 매우 뛰어난 intelligent한 나노머신을 대량 만들어서 뿌려뒀다고 생각하면 되므로, 그리고 능동물질이 애초에 그런 것의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안 될 것은 없다. 물론 상호작용의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되도록 단순한 규칙에 따른 집단현상을 선호하는 통계'물리학'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물리적'으로 구현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참석했던 학회에서 Igor Aranson 교수님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분이 연구하신 것은 signaling (혹은 communicating) active matter인데, 능동물질의 구성 입자들이 단순히 자체 추진 및 상호간에 역학적 충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화학물질의 밀도파를 통해 신호를 원거리까지 전달한다는 개념이다. 이렇게 파동에 의한 원거리 신호전달이 존재하면, 파라미터 선택에 따라서 기존 능동물질 분야에서는 흔히 본적이 없고 마치 콘웨이의 생명게임에서 나올 법한 매우 다채로운 집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미지로 첨부한다. 화학적 신호가 아닌 음파 신호, 즉 입자들 자체의 진동을 서로 주고받을 때에 나타나는 패턴들도 소개해 주셨는데 (acoustic signaling), 구글 스콜라에 뜨지 않는 걸 봐서 bulletin으로만 있고 아직 논문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1. 우측 상단은 입자 시뮬레이션 기반 모형, 우측 하단은 밀도함수 기반의 모형인데 서로 잘 대응되는것이 보인다.(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2.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만약에 이런 양방향적 탐구들을 통해 세포 자동자와 능동물질 분야의 접점이 넓어진다면, 능동물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아진다. 예컨대 세포 자동자에서는 튜링 머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연구되어 있다. 크기만 충분히 크다면 세포자동자가 유니버셜한 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능동물질을 이용해서도 노이즈에 대해 강인한 튜링머신을 만들 수 있다면, 현재의 반도체 기반 디지털컴퓨터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unconventional computing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Herbert Jaeger의 리뷰논문에도 living system을 컴퓨터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unconventional computing은 저전력 컴퓨팅의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개인적으로는 특히 오차를 허용하는 딥러닝 패러다임과 궁합이 좋을거라는 상상을 하게된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과 약간 관련이 있다. 머리속 혹은 컴퓨터 속에 존재하면서 매우 고도화된 집단현상들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형들도, 결국에는 국소성, 보존법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역학법칙 등 여러 물리학적 제약을 받는 물리적 시스템으로써 실현될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통계물리학 전공이다 보니 열역학적 원리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 혼자 하고 있는 상상이고, 학위과정 동안에, 혹은 학위과정 이후에 이러한 방향의 커리어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내 능력과 주변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내 관심사 자체가 바뀔 수도 있고.

특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원거리 신호 전달 같은 게 있을 경우, 에너지 출입을 다루는 전통적인 열역학뿐만 아니라, 맥스웰의 악마 개념을 포함하여 정보 출입까지 다룰 수 있도록 일반화된 '정보열역학'을 적극 도입해서 새로운 결과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각각의 집단현상들에 underlying하는 열역학적 비용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생명체 및 생체모방 인공시스템들의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그리고 컴퓨팅 (특히 머신러닝) 구현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에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 혹은 필요하다면 에너지를 써서라도 원하는 기능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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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0, 2023

존 홉필드(J. J.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 소식

이번 볼츠만 메달의 수상자 중 한 명이 존 홉필드(J. J. Hopfield) 교수님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볼츠만 메달(Boltzmann medal)은 루트비히 볼츠만의 이름을 따서 STATPHYS 학회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가장 큰 상이다. 이번 시상은 작년에 도쿄에서 열렸어야 하지만 올해로 미뤄진 STATPHYS 학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홉필드는 associative memory를 구현한 Hopfield network의 제안자로, 이렇듯 창발적, 집단적 학습기계로서의 뉴럴 네트워크에 대한 초기 기여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무척 유명하다. 제일 많이 인용된 PNAS 논문은 현재 25000회이며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통계물리학자 출신으로, 초기 커리어에서는 exciton 등등 고체와 전자기장의 상호작용 쪽에도 업적이 있다. 또한 확률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해야 하는 세포생물학적 과정(DNA 복제 등)에서의 동적 오류 수정 (kinetic proofreading) 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번에 우리 연구실에서 지원한 과제가 DNA 오류 수정을 비평형 열역학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보니 바로 이 kinetic proofreading과 관련이 있을 예정이라, 이쪽으로 문헌들을 조사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서로 꽤 달라보이는 이들 각각의 분야에서, 수천 회 인용된 논문들을 수십 개 이상 가지고 계시니 (h-index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구글에 검색해 보면 77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것 같다.

홉필드와 함께 수상한 Deepak Dhar 역시 매우 유명한 분이다. 통계물리학의 타 분야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교양서적 등에서 '자기조직화 임계성 (스스로 짜인 고비성, self-organized criticality)'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임계현상이란 계가 완전히 랜덤하지도 않고 완전히 질서있지도 않은 경계 부근에서 나타나는, 인풋 변화에 대한 응답 계수가 발산하는 등의 흥미로운 현상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복잡계라고 부르는 여러 시스템들은 간단한 동역학적 규칙에 의해 계가 스스로를 임계점 근처로 이끌곤 하며 이를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라고 한다.

이는 초기조건을 매우 민감하게 마련해두지 않아도 계가 알아서 그러한 복잡성을 보이도록 진화한다는 것이라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자기조직화 임계성이 처음으로 보고된 시스템 중 하나인 BTW sandpile에 대해 이론적인 분석을 한 것이 Dhar의 대표적 연구이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 볼츠만메달의 두 수상자인 홉필드와 Dhar의 연구가 엮일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뇌가 효과적인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criticality 주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인 critical brain hypothesis가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뇌는 발생 과정의 산물이며 미니멀한 룰들의 연결로 이뤄진만큼 자기조직화 임계성의 예시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딥러닝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자기조직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뉴럴넷의 weight 값들이 상전이의 경계에 있을 때 정보 전파의 깊이가 발산하므로 학습이 잘 이뤄진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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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1, 2022

중력현상의 시뮬레이터로서의 양자컴퓨터: AdS-CFT 대응의 이용

양자컴퓨터로 웜홀을 구현했다는 따끈따끈한 네이쳐 논문이 기사로 나왔다 (네이쳐 논문 링크, 국문기사(뉴시스) 하이퍼링크, 영문기사(quanta magazine) 하이퍼링크). 매우 네이쳐스러운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제들은 나도 교양수준으로만 알고 수식들은 거의 모르는데, 대략 이해한 내용을 써본다. '어려운 저차원 양자다체계 현상'과, '쉬운 고차원 중력현상'의 대응이라는 틀을 기억하면 읽기에 용이하다.


먼저 '양자전송'은 양자얽힘 현상에 의해 정보를 원격 전송하는 것으로, 양자암호(양자기반암호화, 양자내성암호)와 함께 양자통신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다. 양자암호가 각국의 정부 및 산업계에서 상용화 관련 논의가 될정도인 것과 달리, 양자전송은 아직은 실험실 내의 기초과학 연구에 머무르고있다.


양자전송은 국소성 (대충 말해서, 물리적 현상은 공간상에서 정보가 잇따라 전달되면서 나타나며, 한번에 여기서 저기로 점프하진 않는다는 믿음) 을 위배한다. 이것이 직관적으로는 매우 이상하므로 해명이 필요한 역설이라고까지 생각되기도 했는데, 우리 학부 김석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상하긴 해도 국소성이 깨지는 게 그냥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이 양자세계의 비직관성이며 양자전송의 놀라운 점이다.


양자전송을 하려면 양자상태들 사이의 얽힘(entanglement)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여러 양자상태의 얽힌 상태를 유지하며 제어해서 한꺼번에 커다란 계산을 해내는 장치이므로 얽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많이 들어가있다. 그렇기때문에 양자컴퓨터는 얽힘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시스템이다. 이번 논문에서도 9 큐비트짜리 양자컴퓨터 위에서 양자얽힘을 활용해서 실험을 했다.


이 논문도 기본적으로 양자전송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여러 논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재밌는 점은 바로 홀로그래피 원리, 더 정확히는 AdS-CFT correspondence (반 드 지터 공간 - 등각 장론 대응성) 를 이용해서, 흔한(?) 양자통신을 넘어서 훨씬 멋있는 해석을 했다는 점이다.


AdS-CFT 대응성이란 홀로그래피 원리의 일종이다. 간단히 말해서 (1) 높은 차원 공간에서 정의되며 상호작용의 크기가 약한 이론 (주로 양자 중력이론의 후보인 끈 이론) 과, (2) 그 고차원공간의 '경계면'인 낮은차원공간에서 상호작용의 크기가 강한 이론 (주로 응집물질 계에 대한 양자 장론) 이 형식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고차원공간의 정보가 그 경계면인 저차원 공간에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홀로그램을 연상시켜서 그렇게 부른다.


이 대응을 이용하면,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다체계 (쉽게말해 양자컴퓨터 내지는 고체 및 반도체 같은 응집물질들) 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차원에서의 끈 이론의 풀기 쉬운 문제로 대신해서 쉽게 풀 수 있다. 더 멋있게 말하면, 물질 속의 집단현상 문제를 우주 속 중력 문제로 대신해서 풀 수 있다. 이것이 홀로그래피의 강력함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위와는 정반대 방향의 접근을 한다. 둘 사이에 그런 대응이 있다면, 실험으로 만들기 힘든 웜홀 같은 양자중력현상을, 실험으로 어느정도 구현가능한 저차원의 다체계현상으로 대신해서 실험할 수 있다는 재밌는 접근이다.


먼저 우주에 있(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웜홀에서 양자전송이 가능한것처럼, 실험실 속의 양자 다체계에서도 양자전송이 가능하며 이는 이미 꾸준히 실험으로 확인이 되고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양자정보의 전송이라는 점에서 통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별개의 물리현상이다. 전자는 양자중력 현상이고 후자는 중력과 상관이 없다.


이 논문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설비로 sparsified SYK 모델이라는 양자다체계를 구현해서 실제로 양자전송을 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흥미롭게도 AdS-CFT 대응에 의해, 웜홀에 대한 중력이론과 같은 방정식으로 기술이 된다. 이렇게 웜홀의 양자전송과 양자다체계에서의 양자전송이 (형식적으로) 연결되게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를 양자중력현상에 대한 적절한 시뮬레이터로 쓸수 있다는 개념증명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웜홀에서 있어야 하는 여러가지 성질들이, 이 논문에서 연구한 시스템에서의 양자전송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이 (가상의) 웜홀은 아주아주 짧은 거리 사이의 웜홀이라고 한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양자다체계랑 웜홀이 같은 이론으로 기술이 된다고 해서, 그 양자다체계 실험장치 속에 정말로 웜홀이 생긴 것인가? 이는 굳이 따지자면 따질 수 있는 과학철학적 문제인데, 보통은 상식적으로는 'No'라고 답할 것 같다. 실제로 논문에서도 웜홀을 실제로 만들었다 라고 무리하게 주장하기다는, 실험실 속에서 양자중력을 간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쭉 쓰고 나서 생각해 봐도 정말로 네이쳐스러운 논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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