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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rch 28, 2023

물리, 그래픽스, AI 융합연구의 두 가지 방향

그래픽스나 컴퓨터비전 쪽을 physics-aware하게 하는 게 점점 중요해질 수 있어 보인다.


일단 이를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는, 오브젝트들을 생성하고 이동시켜주는 규칙을 최적화하기 위한 손실함수(loss function)를 잘 설계하고 이것으로 뉴럴 네트워크를 학습시켜서 '근사적으로' physics-aware하게 할 수도 있을테다. 즉 large scale 시스템을 일일이 시뮬레이션하지 않고 중요한 자유도만 살리면서도 올바른 윤곽을 흉내내게끔 하는것.

이런 건 이미 실제로 많이 하고 있다. 특히 계산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유체 시뮬레이션 쪽이랑 빛 렌더링 쪽에서, 주요 feature를 뽑아주는 뉴럴넷의 파워를 빌려서 딥러닝 붐 초창기부터 이미 진전이 많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래픽스랑은 다소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 terminology 같긴 하지만, 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도 이런 비슷한 접근법이며 현재는 그래픽스 쪽에서도 많이 적용이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고, 아예 블렌더 등의 그래픽스 프로그램에서 동작하는 스크립트 같은 걸 GPT-4 같은 Language model을 통해 만들되, 그렇게 생성된 스크립트가 물리법칙을 respect하는 물체의 경로를 지시하게끔 한다면, 물리 지식이 없는 사용자도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그래픽을 만들어낼 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그걸로 만들어진 스크립트는 뉴럴넷이라는 커다란 함수를 이용한 근사가 아니라 '정확히' 물리법칙을 존중하게 될테고.
수행하고 싶은 과업의 종류 및 계산량에 따라 이런 방향들 중 무엇이 더 적합할지가 갈릴텐데, 만약에 '시뮬레이션' 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간단한 일상적 장면 표현 같은 데에 쓸 목적이라면 후자의 접근법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미지 전체를 아예 한번에 주조해 버리는 GAN이나 디퓨전 기반의 text-to-video generation (요샌 3d도 되는 듯) 으로 비벼 버릴 수도 있겠으나... 그런 거 말고 오브젝트들의 개체성이 선명해야 한다거나, 정확히 원하는 물리적 동작이 있는 상황이라면 현재와 같은 패러다임의 text-to-video generation은 조금 부적합할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물리법칙을 존중하는 어떤 장면을 만든다고 할때 그 구성요소에 유체역학 혹은 기체의 확산 같은 게 포함되어 있어 버리면 결국은 전자와 같은 방향도 관여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 과학적(?) 재미는 전자쪽에 좀더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인간이 잘 모르는 중요 feature를 뉴럴넷이 알아내서, 적은 비용만으로 전반적인 윤곽을 상당히 정확하게 흉내낸다면, 그런 뉴럴넷을 뜯어보면서 우리 입장에서도 현상의 전체적인 윤곽에 무엇이 중요한 거였구나 하고 배울수가 있으니까.)
이런 접근에서 당장 생각나는 문제점이 있다면 GPT같은 무척 커다란 모델도 물리적 규칙을 이해하는건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자연어에 대한 통계적 이해로부터, 물리법칙을 존중하는 '자연어 생성' 및 '자연어 레벨의 추론' 능력이 emerge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뿐이고. 자연어가 아니라 물리법칙을 존중하는 '코드를 짜는 것'이라면 오히려 훨씬 더 쉬울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사용자가 물리학 지식이 있어서 공식을 아예 manual하게 지시해주고, 옳게 했는지 검토도 가능한 경우에는 지금의 ChatGPT 정도로도 그냥 쉽게 될 것 같다. 그걸 넘어서 일일이 안 알려줘도 실수없이 정확하게 하도록 파인튜닝하는 게 중요하겠지.

암튼 정말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엄청나게 나오고 있으며, 기존 것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구현하는것도 너무 잘 되고 있으니.... 이런것들도 분명히 이미 있거나 조만간에 될 듯.
이런 여러가지 워크플로우들을, 기존에 잘 돼있는 것들을 직접 연결, 또 연결해서 만들어 낼 수만 있는 정도의 표층(?) 코딩 능력만 갖추더라도 지금 다가오고 있는 시대에 꽤 재밌게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장 최근에는 심지어 그것조차 하지 않아도 GPT가 알아서 다 연결시켜 주는 게 나온 모양인데, 그것까진 아직 팔로업하지 못했다.

나는 차라리 내가 바닥부터 직접 코딩하는 시뮬레이션 같은 것은 비교적 잘 할수 있지만 위와 같이 이미 있는 것들을 기민하게 연결해서 작업하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ChatGPT한테 물어봐 가면서 점차점차 익혀 보려고 한다. 프로그래밍 연습 해야된다 해야된다 하면서 계속 안하고 버텼는데 지금이야말로 무조건 해야 될 적기인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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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26, 2023

13학번 선배들의 교수 임용 소식을 보며

전기과 학부시절 13학번 선배들 중에, 올해들어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슬슬 많이 듣는다 (만 27-29세 정도). 과가 워낙 크다 보니 대부분은 직접 아는 분들은 아니긴 한데, 물론 직접 아는 분들도 있고, 분야는 주로 AI 및 AI반도체 쪽인 듯하다.

그리고 직접 인연은 없는 학과지만 수리과학부 쪽에선 우리 통계물리 분야에서 친숙한 PDE들의 수학적 성질을 보시던 13학번 분도 이번에 교수님 되셨다고 들음. 말하자면 응용수학 쪽인데 AI반도체처럼 산업에 직접 응용되는 느낌은 아니므로, 통계물리 전공하는 입장에서 꽤 참고할만한 케이스인 듯하다.


아무튼 현황이 이렇다는 것은 내년쯤이면 우리 14학번들 중에도 교수로 임용되는 분들이 꽤 생길 수도 (아니면 이미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동갑이거나 동기인 지인들 중에서도 박사 받는 분들은 슬슬 생기고 있는데, 교수 임용은 커녕 박사 졸업하는것도 나한테는 사실 아직 하나도 와닿지가 않고 다른 세상 얘기 같다.

14학번 중에서는 누가 가장 먼저 임용이 될까? 내가 인지하고 있는 분 중에서는 컴공 14 중에 박사 미국 유학 가신 어떤 분이 학부때도 잘 하기로 유명했는데, 지금 보니 NLP 쪽에서 인용수가 3천여 회에 달하고, 강연이나 학술행사 같은 걸 할 때면 벌써 교수님들이랑 같은 급으로 섭외돼서 강연 하시고 그러더라. 이분도 졸업이 얼마 안 남으셨을 텐데, 아마 교수로 임용되시거나, 아니면 회사 쪽에 대우가 더 좋은 직책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던가 하실 듯.


나는 이제야 첫 논문 섭밋했는데 물론 분야별 차이도 많이 있을 거고, 학부에서 이상한 거 하느라 남들보다 3-4학기 더 다닌것도 감안을 해야 겠지만... 위처럼 벌써 논문 수백 회 내지는 천몇백 회씩 인용되고 교수 임용되시는 분들을 떠나 그냥 대학원생들 평균, 혹은 회사 생활 하고 있는 친구들 평균이랑 비교해서도 뭔가 커리어의 status가 꽤 늦어지고 있는건 이제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될 현실인 듯하다. 그렇지 않을 줄로만 알았고 실제로 그렇지 않았는데, 첫 실적이 늦어지면서 한 21-22년 기점으로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렇게 되어 버린 느낌이다.


나는 인더스트리 생각을 한동안 많이 했고 지금도 막 아카데미에 꼭 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지식 추구하는 게 제일 재미는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학위과정 동안에 실적이 괜찮게 나와서 뭔가 학문적인 커리어를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그리고 좋은 환경의 포지션이 있으면 가급적 아카데미에 더 있어 보고 싶은 편이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어려운 포지션에서 너무 오랫동안 남기보다는, 물리 전공했다는 백그라운드를 잘 알아주는 곳을 잘 찾아서 취업을 하는 게 개인으로서의 팔자에 더 좋을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어쨌든 나중에 봤을때 미련이 없게끔 최대한 해 봐야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내가 생각중인 내용 및 분야를 좀더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동료들한테 당장의 구상으로는 어필이 잘 안되더라도 나 혼자서도 틈틈이 계산 많이 해보고 하면서 능동적으로 결과를 가져가서 보여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정식으로 approve되지 않은 계산들, 당장에 재밌는반응이 별로 없는 계산들은 이걸 내가 마음대로 해 봐도 되나 주저하면서 제대로 dive in하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make sense하는 방향인데도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럴 이유가 없는것인데...

지금도 involve되어 있는 주제가 몇 가지 있는데 이것들만 졸업 전에 모두 논문실적으로 만들어 내더라도 대기만성 느낌으로 나름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논문화할 만큼 만족스러운 완성도에 도달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연구 자체와 함께, 그것을 어떻게 엮어서 어떤 커리어를 지향할 것인가 하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또 역전될 수도 있고 좋은 길이 보일 수도 있고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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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19, 2023

딥 러닝의 급속한 발전을 지켜본 학부 시절의 기억

요즈음 학부 초년생들은 딥러닝과 그것을 위한 수학 및 프로그래밍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선에서 관심을 갖고 받아들이고 있을지가 문득 궁금하다.


나는 2014년부터 학부를 다녔는데 15년쯤부터 딥러닝 얘기를 슬슬 조금씩 들었었다. 그러다가 16년에 CNN 가지고 style transfer 하는 논문 (사진 찍으면 고흐 등 여러 유명 화가들의 화풍으로 바꿔주는 것) 을 우연히 보고 처음 충격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이세돌 vs 알파고 챌린지 매치로 딥러닝이 대중적으로도 확 뜨고 그랬던 것 같다 (쓰고 보니 이때 이미 초년생은 아니고 고학번이었네...).

아무튼 그 때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최첨단 기술이라고만 생각했고, 기본적인 퍼셉트론 러닝, 즉 비선형 합성함수로 공간에 선 긋는 것부터 마치 물리 공부하듯이 수식으로만 차근차근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미디어나 소셜 미디어에서 소개되었던 딥러닝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마법같은 일들도, 그러한 기초적인 예제들로부터 차원만 크게 키우면 대체로 가능한 것으로서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미약하다는 것은 후술하듯이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동아리 방에서 회원분이 바로 그 style transfer를 코딩으로 직접 구현 및 실행하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그분이 정말 특출나다고만 생각했지 (실제로 엄청 뛰어난 분이긴 했다), 소스 코드가 있을 경우 그냥 다운받아 돌려보면 되는 것이라고는 생각을 잘 못했었다.

전기전자세미나 같은 세미나 수업에서 교수님들께서 multi-layer perceptron을 가지고 딥러닝 설명해 주실 때도, 우리를 위해 대단히 쉬운버전으로 이야기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핵심 알고리즘이 정말로 그게 전부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것 같다.


그러다가 딥러닝에 대해 좀 더 제대로 공부를 해 보게 된 것은 2018년 초에 14학번 동기인 형들이랑, 의예과 학생들 몇 명이랑 Goodfellow 책으로 스터디를 하면서다. 지금 봐도 이론적으로 불필요하게 깊게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딥러닝에 대해 다들 동의할 만한 주요 이슈들을 extensive하게 잘 다룬 책이다.

딥러닝이 오히려 일반적인 컴퓨터 알고리즘에 비해 아날로그적인 직관에 소구하는 부분이 훨씬 많고 (물론 그러한 직관이 misleading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진입장벽의 측면에서는) 저변이 무척 넓어질 수 있겠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다. 일단 어떤 종류의 과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대략적인 이해를 하면, 학습이라는 행위에 대한 수학적 직관과 고차원 공간에 대한 수학적 직관을 바탕으로 결과를 나름대로 interpret하고 이런저런 개선을 해 보는 게 가능하니까 말이다.


암튼 딥 러닝은 지난 몇년간도 그랬지만 최근 1년간에는 정말로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트렌드인데 (특히 생성모델 쪽으로), 요즘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들의 경우 이러한 발전을 어느 정도 선에서 관심을 갖고 수용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즉 시간적으로만 보면 내가 학부때 기본적인 fully connected NN이랑 CNN 같은걸 접하고 최첨단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거랑, 이들이 트랜스포머랑 디퓨전 모델 같은 새로운 아키텍쳐들 보면서 느끼는 거랑 비슷할 텐데, 지금은 저변이 훨씬 넓어지고 그 가능성이 차고 넘치게 증명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받아들이는 게 훨씬 더 빠르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반대로, 최신의 모델들이 워낙 커다랗고 고도화되어 있다 보니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해서 오히려 거리가 멀게 느끼지는 않을까 생각도 든다.


아무튼 딥러닝 기초를 익히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수학적 배경은 다변수 미적분 (+선대) 과 함께 약간의 집합론적 사고(?) 인 듯하다. 후자는 어떻게 불러야 될지 몰라서 집합론적 사고라고 부르는 건데 정확한 표현은 아닌것 같고, 주어진 양이 수학적으로 어느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주어진 함수가 어느 공간에서 어느 공간으로 가는 것인지 등을 따져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딥러닝 이론 공부에서 뭔가 헷갈릴 때엔 늘 이런 걸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된다.

이에 더해서,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트레이닝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느정도의 비용이 드는지에 대해 감각을 얻으려면 실습을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을테고 말이다. 나도 보다 실질적인 연구에 관여되면서 이러한 감각을 얻을 기회를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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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1, 2023

이론물리학의 변방에서: 기초학문 위기 속 진로 고민과 개인적 푸념

명지대 물리학과 폐지 예정 보도가 이번주 내내 소소한 이슈였다.


연구 꿈나무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학계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점점 더 급속히 어려워진다는 비관적인 (그리고 거의 확실한) 예상이 이미 공기처럼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막상 명지대 정도로 이름 있는 학교에서 물리학과 (그리고 수학과, 철학과, 바둑학과) 를 없앤다는 보도가 나오니 상당히 마음이 건드려지기는 한다. 물론 학생들과 교수님들은 반대가 우세하다고 하니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컨설팅을 받고있는 재단쪽이 의지가 강력한 모양이다.


앞으로 학생 인구 감소 때문에 이런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순수학문으로 분류되는 수학, 물리학 그리고 소위 문사철 쪽이 제일 취약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대학의 본령은 순수학문인데 어떻게 이걸 없앨 수 있냐는 주장은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 위치에서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냥 통계물리학이라는 방법론적 배경을 진로에 충분히 활용하면서 내 한몸 건사하고 사회적으로 1인분 몫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씁쓸함이 우선 든다.

오히려 순수학문도 순수학문이지만, 수학 및 물리학과를 폐과함으로써 공학을 비롯해서 산업에 보다 직결된 분야 학생들의 기초역량 교육이 장기적으로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 더 실질적인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거나, 새롭지 않더라도 기존 것들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수있는 혁신력이 한국의 산업생태계에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혁신력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융합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기초적인 방법론적 역량에 대한 확실한 훈련, 그리고 기초적 윤리에 대한 인식 제고에서 나오는 면도 많다고 본다.

또한 다시 개인적 푸념으로 돌아오자. 이공계생 전반에 대한 기초역량 교육을 넘어서 물리학이라는 분야 자체로 봤을때도, 나는 이론물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통계물리 분야가 비록 순수학문에 속할 수 있지만 약간만 옆으로 틀면 사회적 트렌드 주도와 이익창출에 기여해온 부분이 무척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사람들이 잘 몰라주는 것 같아서 늘 아쉽다 (오히려 수학의 경우에는 금융계 잘 간다거나, 인공지능에 중요하다거나 하면서 이런 게 나름 알려져있는 것 같더라).

사실 요즈음은 우리 분야는 딱히 순수 이론물리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음. 이론물리학자들이 보면 너무 practical해서 변방에 속할 것이고, 즉각적인 산업응용을 염두에 둔 쪽에서 보면 또 너무 이론적이고. 그런 중간적 특성이 약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고 성장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아무튼 기업이든 학교든, 국내든 국외든 우리 통계물리 분야의 강점을 잘 알아주는 곳이 많이 있다면 좋을 것 같고, 나도 잘 찾아봐야겠다.

오히려 부모님은 주변을 보니 결국 공부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자리를 얻었었다며, 벌써부터 힘 빠지는 소리 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으면 계속 해 보라고 권장하시기는 한다. 근데 그때와 지금은 또 많이 다를 텐데 싶기도 하고... 너 졸업할때면 교수님들이 많이 은퇴하시지 않냐고 하는데 이미 그 시기는 거의 끝났다고 알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아카데미든 아니든, 물리학 백그라운드를 구체적으로 살릴 수 있는 커리어패스에 대해 encourage하는 얘기가 거의 아무데서도 들리지 않다 보니 나라도 적극적으로 틈날 때마다 여러 재밌는 포지션들을 찾아보고 소개하고 그러는데, 그래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예전부터 가졌던 내 고질적 문제점이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건 많은데도 계속 하던것만 하려고 해서 정작 실제 선택의 폭이 좁고 질투와 불안감만 커진다는 건데... 이게 장기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좀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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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23, 2023

세포 자동자와 능동 물질: 비교하고 접점을 탐색하기

콘웨이의 생명 게임으로 가장 잘 알려진 Cellular automata (세포 자동자) 에서는 그 규칙과 초기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멋진 집단현상들이 보고된다. 자기 혼자서만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패턴, 무언가를 계속 멀리 쏘아보내는 패턴, 마치 영양분이 충분한 균들처럼 무한 증식하는 패턴 등이 있다.

이러한 세포 자동자를 이산적인 격자가 아니라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S Rafler가 만든 SmoothLife와, Bert Chan이 만든 Lenia 등이 있다 (아래 그림). 이들은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되다 보니, 정말로 동글동글한 원시적 생명체처럼 생긴 것들이 서로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해서 구조를 이루는 등 무척이나 신기하다. 후자의 Lenia를 만든 Bert Chan의 경우 구글브레인 도쿄 캠퍼스에 계신 분이고, 지금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visiting하고 계신 듯하다.

expanded version of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 and expanded universe." (링크).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biology of artificial life." arXiv preprint arXiv:1812.05433 (2018)).


한편, 현재 내 연구 주제인 능동물질(active matter)도, 에너지를 소모해서 스스로를 평형으로부터 멀게 유지하며 자기조직화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집단현상들을 나타낸다. 이들이 그 상호작용 규칙과 파라미터 범위에 따라 보여주는 여러가지 패턴은, 어떤 순간의 물질 분포와 미리 정해진 동역학적 규칙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해지는 노이즈값에 따라서, 그 다음 순간의 물질의 밀도분포 (혹은 입자기반 모형일 경우 각 입자들의 위치) 가 정해지는 방식으로 업데이트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러한 능동물질은 세포자동자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지어질 수 있어 보인다. 둘 다 공간 속에서 외부 입력 없이 에이전트들끼리의 상호작용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자명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포자동자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패턴들이, 생각보다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능동물질 패러다임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탐구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야의 발전사와 관련된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그 가장 큰 이유는, 세포 자동자의 변화 규칙을 실제로 implement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구현가능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즉 능동물질은 어디까지나 물리학 모형이기 때문에 물질 혹은 신호가 국소적으로, 즉 한 점에서 바로 인접한 다른 점으로 잇따라 전달되어야 한다거나, 실제 물리계 혹은 생체계에서 구현 가능한 메커니즘이어야 하는 등 여러 제약들이 존재한다. 반면 세포자동자의 경우에는 세포가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것도 가능한 등, 업데이트 규칙의 설정이 능동물질의 경우보다 훨씬 자유로운 듯하다. 주로 컴퓨터 아트 및 정보과학의 문화예술 응용 쪽 (정확히 어떻게 묶어 불러야 할지 모르겠음. 아무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나, Bert Chan 같은 분들) 에서 그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을 많이 탐구하는 듯하다.

이 두 가지 분야의 잠재적인 접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할 것이다. 세포자동자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physics-grounded된 모형을 보거나, 아니면 반대로 능동물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능동입자들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자유분방하게 세팅해주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단순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변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일종의 intelligence를 개별 입자 수준에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에 해당하는 것을 지난번에 최승준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다 (물리학전공자 출신으로 미디어아트 쪽에 계시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적극 접목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DeepDream으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모드빈체프 (Alexander Mordvintsev) 는 그 이후로는 neural cellular automata라고 해서, 세포자동자를 마구 흩뜨려 놓은 상태에서 출발시켜도 원하는 이미지로 수렴하도록 상호작용 규칙을 학습하는 매우 신기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법한 초록색 도마뱀 그림이 바로 그거다 (Growing neural cellular automata: 링크). 이러한 neural cellular automata는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성적 산업디자인에 응용하기도 했다 (아래 그림).

Neural cellular automata를 이용한 모양 완성 (shape completion),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 (출처: https://iclr.cc/virtual/2021/poster/2914, Zhang, Dongsu, et al. "Learning to generate 3d shapes with generative cellular automata." arXiv preprint arXiv:2103.04130 (2021).



그런데 이 모드빈체프가 최근에는 세포자동자가 아니라 입자 기반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 동기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추측으로는 아마도 위에서 말한 내 문제의식대로, 단지 컴퓨터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물리계, 이를테면 살아있는 세포들 혹은 나노머신들로 실현 가능한 상호작용 규칙을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인공적/자연적 신경망 쪽에 인상깊은 기여를 하신 분들이 living matter 쪽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아서 신기하다. 지난번에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소식에 대해 포스팅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뉴럴네트워크는 결국 여러가지 패턴을 표현가능하고 심지어 일반화까지 가능한 커다란 비선형 시스템이다보니, 생체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쪽이랑 그 방법론적 출발점은 달라 보이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뭔가 비슷한 종류의 관심사로 분류되는 듯하다.)


다음으로 그 반대 방향, 즉 능동물질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sophisticated하게 디자인하는 방향을 보자. 예컨대 주변을 인식하고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운동 능력도 매우 뛰어난 intelligent한 나노머신을 대량 만들어서 뿌려뒀다고 생각하면 되므로, 그리고 능동물질이 애초에 그런 것의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안 될 것은 없다. 물론 상호작용의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되도록 단순한 규칙에 따른 집단현상을 선호하는 통계'물리학'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물리적'으로 구현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참석했던 학회에서 Igor Aranson 교수님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분이 연구하신 것은 signaling (혹은 communicating) active matter인데, 능동물질의 구성 입자들이 단순히 자체 추진 및 상호간에 역학적 충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화학물질의 밀도파를 통해 신호를 원거리까지 전달한다는 개념이다. 이렇게 파동에 의한 원거리 신호전달이 존재하면, 파라미터 선택에 따라서 기존 능동물질 분야에서는 흔히 본적이 없고 마치 콘웨이의 생명게임에서 나올 법한 매우 다채로운 집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미지로 첨부한다. 화학적 신호가 아닌 음파 신호, 즉 입자들 자체의 진동을 서로 주고받을 때에 나타나는 패턴들도 소개해 주셨는데 (acoustic signaling), 구글 스콜라에 뜨지 않는 걸 봐서 bulletin으로만 있고 아직 논문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1. 우측 상단은 입자 시뮬레이션 기반 모형, 우측 하단은 밀도함수 기반의 모형인데 서로 잘 대응되는것이 보인다.(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2.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만약에 이런 양방향적 탐구들을 통해 세포 자동자와 능동물질 분야의 접점이 넓어진다면, 능동물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아진다. 예컨대 세포 자동자에서는 튜링 머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연구되어 있다. 크기만 충분히 크다면 세포자동자가 유니버셜한 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능동물질을 이용해서도 노이즈에 대해 강인한 튜링머신을 만들 수 있다면, 현재의 반도체 기반 디지털컴퓨터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unconventional computing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Herbert Jaeger의 리뷰논문에도 living system을 컴퓨터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unconventional computing은 저전력 컴퓨팅의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개인적으로는 특히 오차를 허용하는 딥러닝 패러다임과 궁합이 좋을거라는 상상을 하게된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과 약간 관련이 있다. 머리속 혹은 컴퓨터 속에 존재하면서 매우 고도화된 집단현상들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형들도, 결국에는 국소성, 보존법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역학법칙 등 여러 물리학적 제약을 받는 물리적 시스템으로써 실현될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통계물리학 전공이다 보니 열역학적 원리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 혼자 하고 있는 상상이고, 학위과정 동안에, 혹은 학위과정 이후에 이러한 방향의 커리어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내 능력과 주변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내 관심사 자체가 바뀔 수도 있고.

특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원거리 신호 전달 같은 게 있을 경우, 에너지 출입을 다루는 전통적인 열역학뿐만 아니라, 맥스웰의 악마 개념을 포함하여 정보 출입까지 다룰 수 있도록 일반화된 '정보열역학'을 적극 도입해서 새로운 결과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각각의 집단현상들에 underlying하는 열역학적 비용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생명체 및 생체모방 인공시스템들의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그리고 컴퓨팅 (특히 머신러닝) 구현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에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 혹은 필요하다면 에너지를 써서라도 원하는 기능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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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22, 2023

효율적인 문헌 조사의 방법: 리뷰논문을 중심으로

새롭게 살펴보는 세부 주제에 대해 문헌 조사를 하다 보면 논문 레퍼런스를 타고 한없이 가지를 쳐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적절한 시점에 끊지 못하면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쓰면서 정작 충분히 자세히 읽지는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대략 아래의 3단계 hierarchy를 바탕으로 한다면 해당 분야 논문들의 흐름과, 그 흐름 속에서의 중요한 논문들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물론 실제로 링크를 타고 타고 가다 보면 아래 순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진행이 되지만, 아래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염두에라도 두고 있으면 그래도 길을 덜 잃는 것 같다.

1. 관심키워드로 검색해서 걸리는 비교적 최신 연구논문들

2. 그것들에서 인용하고있는, 많이 인용된 리뷰 논문들

3. 그 리뷰논문들에서 언급하고있는, 패러다임을 촉발시킨 주요 논문들

(+ 4. 그냥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 (절제심이 무척 필요))

1번에서는 주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해서 어떤 새로운 현상들을 얻고 있는지 위주로만 살펴보고, 2 및 3에서 배경 이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는 것이 좋다.

이때, 당연한 말이지만 각 논문이 다른 논문을 언급하고 있는 구체적인 맥락을 읽어 가며 그걸 바탕으로 따라가는 게 좋다.

또한, 윈도우 숫자만 무조건 늘리지 말고, 한번 켠 것은 기록해둘지 패스할지 그 당일날 반드시 판단하고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보다 신중한 서치에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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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16, 2023

해외 이공계 커리어 관련 정보 (residency program, Simons foundation)

1. 레지던시 프로그램(residency program)

한국에 이것과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외국계 IT 회사들에는 residency program이라는 게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의과대학에서 수련생을 레지던트라고 하는것처럼, 회사들에서의 residency 제도도 기본적으로는 정해진 기간 동안 심화된 전문성을 얻기 위한 훈련 과정인 듯하다.


그런데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회사들에서 운영하는 이러한 residency program들의 특징은, 주로 타 분야의 background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들의 분야, 곧 IT 부문으로 transition 시키기 위한 훈련과정이라는 점이다. 계약 기간 동안 급여를 꽤 많이 주고 프로젝트에도 참여를 시키는 등 인턴 직원 비슷한 대우이지만, 한편으로는 훈련과 멘토링을 받으면서 성과를 내야 하는 학생 비슷한 대우도 있는 것 같다 (끝마치는 걸 graduat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높은 성과를 보이면 정식 취업에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도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research 직무 쪽으로도 이러한 residency program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물리학 등 기초과학분야 백그라운드를 가진 채로 해외 연구개발직 취업을 생각한다면 이 단어를 알아 두고 제도를 잘 이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인원도 무척 적은데다 매년 열리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제도들에 대해 한국어로 된 정보는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작성해둔다.


2. Simons Foundation

Jim Simons는 순수 수학 및 물리학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면서, 매우 유명한 펀드매니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분이 수학을 전공한 배경 덕분인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쪽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Simons 재단에서 각 기관의 연구자를 위한 postdoc 및 faculty 펀딩뿐만 아니라, 아예 기초과학 및 계산과학 쪽으로 자체적으로 연구기관들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이 재단에서 내세우고 있는 토픽들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서, 만약 아카데미에 남고 싶다면 Simons 재단이 제공하는 펀딩과 포지션들도 알고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지원을 받으려면 무척 뛰어나야 할 것이다). 예컨대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Surya Ganguli 연구실에서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생명과학, 뇌과학 및 기계학습의 폭넓은 주제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데, 여기서 이번에 박사를 받은 분도 Simons 재단의 연구기관 중 하나인 Flatiron Institute에 가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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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13, 2023

2023년 새해 목표들

- 말끝을 흐리지 않고 문장을 명료하게 끝맺도록 연습하기
: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은 종종 받는데 조음이 원활한 편이 아니어서 발음이 웅얼거리고 말끝을 흐리다 보니 그걸 깎아먹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일단 말을 시작한 다음에 문장을 명확히 정리하려고 수습(?)하다보면 문장이 꼬이게 된다. 내가 느끼기엔 테크니컬하게 개선이 가능한 문제 같은데, 남들이 보기엔 태도와 자신감의 문제로 보일 테니 분명히 개선이 필요할듯. 최근에 이걸 어느 정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1) 말할때 입을 크게 벌리고 (2) 문장의 얼개를 미리 생각해둔 다음에 말하고 (3) 옛날 서울사투리를 흉내낸다고 생각하고 말하면 된다.

- 논문 하나 억셉시키고 하나 이상 초안 완성하기
: 초안 작성해 둔 논문은 교수님께서 내용적으로는 고칠 게 크게 없고 셀링 부분 위주로 첨삭을 해 주겠다고 하셨다. 첫 논문인데 많이 늦어져서 초조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일은 지금까지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좀 빨리 해서 올해 안에 완성하면 좋을 것 같다. 내년쯤 되면 논문 내는 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보람차지만 일상적인 일로 느껴지게 되면 좋겠음.

- 타 기관 대학원생 혹은 교수님과 협업 계기 마련하기
: 우리 연구실 학생 중에 현재 혼자서만 일하고 있는 건 나뿐이다. 물론 교수님께서 국내 학술행사에서 포스터 발표 같은걸 해볼 기회는 정말 많이 주시긴 했으나, 거기서 지속적인 협업의 계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타 기관 사람들도 내가 누구인지,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상태가 되어야 조금 더 학계의 일원으로 구체적인 소속감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 물론 협업이 지리멸렬해지거나 내가 원하는대로 안 흘러가면 그것대로 큰 스트레스일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협업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도 내 능력일 것이다.

- 이론물리 스터디
: 지인들에게 우리 분야를 소개할 때, 내가 주로 사용해온 방법론은 '이론물리 중에서 비교적 쉽고 새로운 것'이라고 늘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훈련받은 물리학도라면 알아야 하는 advanced된 이론들에 대해서도 늘 갈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상반기에는 우리 교수님의 '상전이와 임계현상' 강의록이랑 Critical dynamics (Täuber)를 볼 계획이고, 하반기에는 linear response theory (그냥 David Tong 렉쳐노트로 간단히) 랑 path integral (Chaichian) 을 공부할 예정이다. 사실 구체적으로 써먹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보니 늘어질려면 끝없이 늘어질 수 있어서 궁금했던 질문거리들 위주로 지혜롭게 공부해야 될 것 같고, 내가 건의해서 만든 우리과 원생 단톡방에서 이런 스터디를 모집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 글 쓸 계기를 마련하기
: 인문사회학뿐만 아니라 우리 물리학분야 쪽 대학원생들 중에서도, 대학원생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크고작은 잡지 혹은 웹진에 기고를 하거나 도서 번역 같은 것에 참여하는 경우가 더러 있던데 어떻게 기회를 얻는지 궁금하고, 그런 일에도 언젠가 참여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근데 기고의 기회를 얻을 만한 나만의 컨텐츠나 인지도가 현재 없는 게 사실이니까... 지금 당장 부러워하면서 억지로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학위 취득의 과정에서 내 컨텐츠를 만들면서 긴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 그 외
: 과학철학 스터디, ML 스터디도 느리지만 꾸준히 하기
: 여기저기 분산된 개인 자료들을 노션 중심으로 모두 통합하기
: 독서, 영화, 음악감상 및 노션에 기록
: 오래 못 본 사람들 약간 어색하더라도 연락해서 밥 먹으면서 인연 유지하기

Tuesday, January 10, 2023

존 홉필드(J. J.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 소식

이번 볼츠만 메달의 수상자 중 한 명이 존 홉필드(J. J. Hopfield) 교수님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볼츠만 메달(Boltzmann medal)은 루트비히 볼츠만의 이름을 따서 STATPHYS 학회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가장 큰 상이다. 이번 시상은 작년에 도쿄에서 열렸어야 하지만 올해로 미뤄진 STATPHYS 학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홉필드는 associative memory를 구현한 Hopfield network의 제안자로, 이렇듯 창발적, 집단적 학습기계로서의 뉴럴 네트워크에 대한 초기 기여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무척 유명하다. 제일 많이 인용된 PNAS 논문은 현재 25000회이며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통계물리학자 출신으로, 초기 커리어에서는 exciton 등등 고체와 전자기장의 상호작용 쪽에도 업적이 있다. 또한 확률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해야 하는 세포생물학적 과정(DNA 복제 등)에서의 동적 오류 수정 (kinetic proofreading) 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번에 우리 연구실에서 지원한 과제가 DNA 오류 수정을 비평형 열역학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보니 바로 이 kinetic proofreading과 관련이 있을 예정이라, 이쪽으로 문헌들을 조사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서로 꽤 달라보이는 이들 각각의 분야에서, 수천 회 인용된 논문들을 수십 개 이상 가지고 계시니 (h-index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구글에 검색해 보면 77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것 같다.

홉필드와 함께 수상한 Deepak Dhar 역시 매우 유명한 분이다. 통계물리학의 타 분야 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교양서적 등에서 '자기조직화 임계성 (스스로 짜인 고비성, self-organized criticality)'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임계현상이란 계가 완전히 랜덤하지도 않고 완전히 질서있지도 않은 경계 부근에서 나타나는, 인풋 변화에 대한 응답 계수가 발산하는 등의 흥미로운 현상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복잡계라고 부르는 여러 시스템들은 간단한 동역학적 규칙에 의해 계가 스스로를 임계점 근처로 이끌곤 하며 이를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라고 한다.

이는 초기조건을 매우 민감하게 마련해두지 않아도 계가 알아서 그러한 복잡성을 보이도록 진화한다는 것이라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자기조직화 임계성이 처음으로 보고된 시스템 중 하나인 BTW sandpile에 대해 이론적인 분석을 한 것이 Dhar의 대표적 연구이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 볼츠만메달의 두 수상자인 홉필드와 Dhar의 연구가 엮일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뇌가 효과적인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criticality 주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인 critical brain hypothesis가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뇌는 발생 과정의 산물이며 미니멀한 룰들의 연결로 이뤄진만큼 자기조직화 임계성의 예시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딥러닝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자기조직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뉴럴넷의 weight 값들이 상전이의 경계에 있을 때 정보 전파의 깊이가 발산하므로 학습이 잘 이뤄진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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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1, 2022

중력현상의 시뮬레이터로서의 양자컴퓨터: AdS-CFT 대응의 이용

양자컴퓨터로 웜홀을 구현했다는 따끈따끈한 네이쳐 논문이 기사로 나왔다 (네이쳐 논문 링크, 국문기사(뉴시스) 하이퍼링크, 영문기사(quanta magazine) 하이퍼링크). 매우 네이쳐스러운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제들은 나도 교양수준으로만 알고 수식들은 거의 모르는데, 대략 이해한 내용을 써본다. '어려운 저차원 양자다체계 현상'과, '쉬운 고차원 중력현상'의 대응이라는 틀을 기억하면 읽기에 용이하다.


먼저 '양자전송'은 양자얽힘 현상에 의해 정보를 원격 전송하는 것으로, 양자암호(양자기반암호화, 양자내성암호)와 함께 양자통신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다. 양자암호가 각국의 정부 및 산업계에서 상용화 관련 논의가 될정도인 것과 달리, 양자전송은 아직은 실험실 내의 기초과학 연구에 머무르고있다.


양자전송은 국소성 (대충 말해서, 물리적 현상은 공간상에서 정보가 잇따라 전달되면서 나타나며, 한번에 여기서 저기로 점프하진 않는다는 믿음) 을 위배한다. 이것이 직관적으로는 매우 이상하므로 해명이 필요한 역설이라고까지 생각되기도 했는데, 우리 학부 김석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상하긴 해도 국소성이 깨지는 게 그냥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이 양자세계의 비직관성이며 양자전송의 놀라운 점이다.


양자전송을 하려면 양자상태들 사이의 얽힘(entanglement)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여러 양자상태의 얽힌 상태를 유지하며 제어해서 한꺼번에 커다란 계산을 해내는 장치이므로 얽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많이 들어가있다. 그렇기때문에 양자컴퓨터는 얽힘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시스템이다. 이번 논문에서도 9 큐비트짜리 양자컴퓨터 위에서 양자얽힘을 활용해서 실험을 했다.


이 논문도 기본적으로 양자전송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여러 논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재밌는 점은 바로 홀로그래피 원리, 더 정확히는 AdS-CFT correspondence (반 드 지터 공간 - 등각 장론 대응성) 를 이용해서, 흔한(?) 양자통신을 넘어서 훨씬 멋있는 해석을 했다는 점이다.


AdS-CFT 대응성이란 홀로그래피 원리의 일종이다. 간단히 말해서 (1) 높은 차원 공간에서 정의되며 상호작용의 크기가 약한 이론 (주로 양자 중력이론의 후보인 끈 이론) 과, (2) 그 고차원공간의 '경계면'인 낮은차원공간에서 상호작용의 크기가 강한 이론 (주로 응집물질 계에 대한 양자 장론) 이 형식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고차원공간의 정보가 그 경계면인 저차원 공간에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홀로그램을 연상시켜서 그렇게 부른다.


이 대응을 이용하면,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다체계 (쉽게말해 양자컴퓨터 내지는 고체 및 반도체 같은 응집물질들) 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차원에서의 끈 이론의 풀기 쉬운 문제로 대신해서 쉽게 풀 수 있다. 더 멋있게 말하면, 물질 속의 집단현상 문제를 우주 속 중력 문제로 대신해서 풀 수 있다. 이것이 홀로그래피의 강력함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위와는 정반대 방향의 접근을 한다. 둘 사이에 그런 대응이 있다면, 실험으로 만들기 힘든 웜홀 같은 양자중력현상을, 실험으로 어느정도 구현가능한 저차원의 다체계현상으로 대신해서 실험할 수 있다는 재밌는 접근이다.


먼저 우주에 있(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웜홀에서 양자전송이 가능한것처럼, 실험실 속의 양자 다체계에서도 양자전송이 가능하며 이는 이미 꾸준히 실험으로 확인이 되고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양자정보의 전송이라는 점에서 통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별개의 물리현상이다. 전자는 양자중력 현상이고 후자는 중력과 상관이 없다.


이 논문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설비로 sparsified SYK 모델이라는 양자다체계를 구현해서 실제로 양자전송을 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흥미롭게도 AdS-CFT 대응에 의해, 웜홀에 대한 중력이론과 같은 방정식으로 기술이 된다. 이렇게 웜홀의 양자전송과 양자다체계에서의 양자전송이 (형식적으로) 연결되게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를 양자중력현상에 대한 적절한 시뮬레이터로 쓸수 있다는 개념증명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웜홀에서 있어야 하는 여러가지 성질들이, 이 논문에서 연구한 시스템에서의 양자전송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이 (가상의) 웜홀은 아주아주 짧은 거리 사이의 웜홀이라고 한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양자다체계랑 웜홀이 같은 이론으로 기술이 된다고 해서, 그 양자다체계 실험장치 속에 정말로 웜홀이 생긴 것인가? 이는 굳이 따지자면 따질 수 있는 과학철학적 문제인데, 보통은 상식적으로는 'No'라고 답할 것 같다. 실제로 논문에서도 웜홀을 실제로 만들었다 라고 무리하게 주장하기다는, 실험실 속에서 양자중력을 간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쭉 쓰고 나서 생각해 봐도 정말로 네이쳐스러운 논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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