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논문들에 비해 박사학위논문들은 많이는 안 읽어 봐서 그 구성의 전략 같은 걸 잘 모르지만, 학위과정 중에 다뤘던 개별 문제들을 꿰뚫는 하나의 스토리 내지는 중심적인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풀어나가는 듯하다.
그걸 염두에 두면, 내 경우에는 통계역학에서 말하는 '평형'이라는 게 무엇인지, 현대적 포말리즘에서 수식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부터 꽤 많은 비중을 할애해서 다루면서 시작하면 좋을 듯하다. 이걸 튼튼하게 수립해 둬야, 조건 하나씩 빼 가면서 어떤 종류의 비평형이 나오는지 깊게 살펴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로서는 약간 옛것 느낌이 드는 macroscopic한 열역학, 그리고 microscopic한 시스템에 대한 linear response theory까지 필연적으로 건드리게 될 듯. 어차피 현대적인 포말리즘 안에서 놀 거라면 그런것들을 안 해도 개별적인 계산 진행에는 문제가 없으나, 지금 내가 하는게 왜 나온 것인지, 어떤 현대적인 개념과 옛 개념이 과연 서로 같은것인지 다른것인지 등등 깊은 이해와 설명을 하기는 어려움.
암튼 이런 걸 왜 목표삼게 되었냐면... 일단 평형을 다룰 때 여러 논문들에서 정의나 전제조건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 다른데, 그것들 사이의 관계 및 논리적 위계를 통합적으로 다루면서 정리해주는 문헌은 흔히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사실 많지 않은 수의 논문들을 인용하면서 금세 정리할 수 있다. 이건 단순히 테크니컬한게 아니라, 어떻게 깨지냐에 따라 아예 다른 열역학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정의와 전제를 공유하는 동일한 포말리즘인데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좀 다른 랭귀지로 쓰여있는 경우 (transition probability 기반일지, 혹은 probability current 기반일지 등등)도 있다. 그것들 사이에는 명시적인 계산을 통해 반드시 서로 링크를 지어줄수 있는데, 그걸 직접 보여주는 계산들을 수록하는 것 역시 꽤 유익하지 싶다. 딱 하나의 간단한 계산을 통해 bridge를 제공해주기만 해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 답답함이 사라지고 많은게 명쾌해지는데, 의외로 그런 bridge들이 잘 없음.
페이스북에도 종종 썼듯이 novel한 결과가 아닌 일상적인 계산들도 허투루 버리지 말고 꼭 정리해서 남겨두자고 결심했었는데, 그 이유는 사실은 심심함(...)에 가까웠다. 그러나 훨씬 실질적인 목적을 찾자면 바로 이런 것인 듯. 원래 저렇게 마음먹은 것은 짧지않은 학위과정에서 어떻게든 데일리한 성취감 찾으려고 그런거였는데, 학위논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매우 실질적인 목적이 생기는거니까.
암튼 그래서 읽는이가 내 학위논문 하나만 옆에 끼고 읽더라도, 평형과 그 깨짐을 다룸에 있어서 미묘하게 달라서 헷갈리는 여러 픽쳐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게끔 하는게 목표이다. 여기에 더해서, 너무 수학으로 가지 말고 철저히 물리로 설명할수 있으면 더 좋은 물리학 학위논문일 것이다. 애초에 수학을 잘 모르는데 수학 정리들 인용해서 풀어나가는 게 약간 무책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수학과에서 우리쪽과 관련된 수리물리 연구 하시는 분들이 쓴 문헌들 보면 많은 도움은 될 듯).
그러고 보니 학부 때 물리과 졸업논문 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percolation 모형 및 거기서 쓰이는 finite-size scaling 등 통계역학의 일반 기법에 대해 공부할 때에도, 이런 쪽으로 긍정적인 경험이 있었다. 여러 저널 논문들에서 서로 조금씩 다르거나 부분적인 얘기만을 하고 있어서 헷갈리던 것을, 당시 논문지도교수셨던 강병남 교수님 연구실에서 나온 학위논문들(조영설 교수님, 오수민 박사님)을 옆에 끼고 읽으면서 좀 더 잘 이해했었으니 말이다. 내 학위논문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한다면 좋지 않을까.
물론 내 관심 주제는 (1) 이런식의 이론 확률열역학 그 자체랑, (2) 그것의 능동물질(active matter)에의 적용 그 사이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획은 얼마든지 엎어질 수도 있다. 만약 학위 연구 과정에서 후자가 많이 강조되게 된다면, 이런 얘기를 깊게 다룰 만한 여유는 없겠지.
지금으로선 (1), (2) 둘다 재밌긴 하고, 양쪽 다 균형있게 다뤄서 어디로든 갈수 있게 리스크 관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근데 후자의 경우에도 실제 세상에의 직접적 유용성 쪽보다는, 평형 모형에는 없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이론적 모형이라는 측면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는 거라서, 냉정하게 보면 전자 쪽에 가까운 관점으로 공부 중인 듯하다. 교수님께서도 내가 꼼꼼하다 보니 전자 쪽으로도 잘 할수 있을거라고 하셨었다.
근데 다 떠나서 선배 연구자들의 박사학위 논문 보면 이런 작업이 이미 많이 돼있을수도 있다 =_= (근데 내가 이런걸 하려고 참고하고 있는 논문들 중엔 총 인용수 30회 이하의 논문도 많다보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듯) 결국 일반 저널 논문들뿐 아니라 학위논문들도 많이 읽어보면서 감을 더 잡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한 집착적인 고민을 하기 이전에, 연구 관련된 고민들부터 평소에 열심히 잘해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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