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진행된 한국물리학회 봄학술대회에 참여하고 일요일까지 대전에 조금 더 머물렀다.
학회에서는 맥스웰의 악마, 정보열역학 등에 대한 내 최근의 연구 주제를 바탕으로 포스터 발표를 했다. 사실 기본 틀 자체는 지난 학기에 한 것과 똑같은데, 이번에 큰 편차 이론(large deviation theory)을 바탕으로 진전된 내용들을 추가해서 가지고 갔다. 애정을 가진 주제인데 이번에도 교수님들께는 많이 못 보여드린 것이 아쉽긴 하지만 다행히 함께 공부하는 입장인 대학원생 동료들이 많이 와서 재밌게 들어주셨고, 통계물리가 아닌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도 어느정도 재미있게 설명이 가능한 주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통계물리 분야는 본래 이런저런 워크숍도 많고 서로 꽤나 돈독한 편인데, 이번 물리학회에 와보니 슬슬 모르는 얼굴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주로 대학원에 새로 들어오신 분들일 텐데, 그 분들과도 새롭게 통성명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달리 말하면 이는 어느새 졸업을 생각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동안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앞으로는 떳떳한 박사가 될 수 있게 남은 기간 동안 내 스스로의 힘으로 포말리즘을 써 내려가고 계산을 뚫으면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학회 끝나고서는 일단 자전거를 꽤 많이 탔다. 대전이 자전거 타기에 참 좋은 도시다. 택시비를 쓰지 말아 보자는 생각으로, 어디 갈때면 공용자전거 타슈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식으로 이동했다. 특히 갑천을 따라 DCC부터 어은동에 이르는 길이 평탄하고 사람도 많지 않은지라 자전거를 타기에 정말 좋아서, 친구를 기다리며 편도로 세 번 정도 달려 보기도 했다.
주말 약속은 모두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고교 동기들은 단 2년만 함께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봐도 참 한결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서 신기하다. 그래도 각자 가는 길은 다르다.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대부분 대학원 가서 박사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학원에 남아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고 (특히 나랑 친했던 애들이 더 그런 것 같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ㅠㅠ
특히 이번에 카이스트 교수가 된 동기도 만나서, 연구실 구경할 겸 카이스트 산책도 했다. 우리 한성과학고 21기 중에 교수 임용은 처음인 걸로 아는데, 이 친구는 최근 수 년간 파격적으로 젊은 학자 채용을 많이 한 AI나 AI반도체 쪽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주 젊은 나이에 임용된 거라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고교 시절이나 학부 때도 뽐내는 타입이 아닌데도 늘 잘하고 집념도 대단하고 태도도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잘되어서 보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대전역에 꿈돌이 매장이 있다고 하길래 마음의 준비 없이 들렀다가 홀린 듯이 많이 사 버렸다. 표정을 알 수 없고 무언가를 꿈꾸는 듯한 근본-꿈돌이는 지극히 담백하고 귀엽지만 다소간에 고전적인 '도안'의 개념에 묶여 있는 느낌도 있는데, 요새 재조명되면서 나오는 꿈돌이들은 표정도 풍부한 편이고 통통하며 친근감이 있다. 처음 볼 때는 상당히 낯설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또 괜찮은 듯하다. 한 도시의 (사실상)마스코트가 미래 과학기술 관련이고, 최고층 건물 이름도 사이언스센터인 것은 참 멋진 일인 듯하다.
주말에 묵은 숙소 바로 앞에는 옛날식 찻집이 있었는데, 어항도 여러 개 있고 식물도 많이 있어서 약간 2000년대 한국 영화 미장센 느낌이 났다. 주인분이 내 지갑에 있는 실밥들을 보시더니 오래 써야 된다며 라이터로 실밥을 태워주셔서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호의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식사빵 말고 간식빵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대전 올 때도 성심당을 잘 안 갔었는데, 이번에 아침에 줄이 별로 없길래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둘러봤다. 고구마 빵이랑 거북메론빵을 샀는데 가격도 저렴할뿐더러 아주 예쁘고 맛있었다. 내년 봄 KPS는 평소와 달리 대전에서 안 하는지라, 이번에 대전 한번 열심히 둘러보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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