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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1, 2023

이론물리학의 변방에서: 기초학문 위기 속 진로 고민과 개인적 푸념

명지대 물리학과 폐지 예정 보도가 이번주 내내 소소한 이슈였다.


연구 꿈나무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학계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점점 더 급속히 어려워진다는 비관적인 (그리고 거의 확실한) 예상이 이미 공기처럼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막상 명지대 정도로 이름 있는 학교에서 물리학과 (그리고 수학과, 철학과, 바둑학과) 를 없앤다는 보도가 나오니 상당히 마음이 건드려지기는 한다. 물론 학생들과 교수님들은 반대가 우세하다고 하니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컨설팅을 받고있는 재단쪽이 의지가 강력한 모양이다.


앞으로 학생 인구 감소 때문에 이런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순수학문으로 분류되는 수학, 물리학 그리고 소위 문사철 쪽이 제일 취약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대학의 본령은 순수학문인데 어떻게 이걸 없앨 수 있냐는 주장은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 위치에서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냥 통계물리학이라는 방법론적 배경을 진로에 충분히 활용하면서 내 한몸 건사하고 사회적으로 1인분 몫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씁쓸함이 우선 든다.

오히려 순수학문도 순수학문이지만, 수학 및 물리학과를 폐과함으로써 공학을 비롯해서 산업에 보다 직결된 분야 학생들의 기초역량 교육이 장기적으로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 더 실질적인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거나, 새롭지 않더라도 기존 것들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수있는 혁신력이 한국의 산업생태계에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혁신력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융합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기초적인 방법론적 역량에 대한 확실한 훈련, 그리고 기초적 윤리에 대한 인식 제고에서 나오는 면도 많다고 본다.

또한 다시 개인적 푸념으로 돌아오자. 이공계생 전반에 대한 기초역량 교육을 넘어서 물리학이라는 분야 자체로 봤을때도, 나는 이론물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통계물리 분야가 비록 순수학문에 속할 수 있지만 약간만 옆으로 틀면 사회적 트렌드 주도와 이익창출에 기여해온 부분이 무척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사람들이 잘 몰라주는 것 같아서 늘 아쉽다 (오히려 수학의 경우에는 금융계 잘 간다거나, 인공지능에 중요하다거나 하면서 이런 게 나름 알려져있는 것 같더라).

사실 요즈음은 우리 분야는 딱히 순수 이론물리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음. 이론물리학자들이 보면 너무 practical해서 변방에 속할 것이고, 즉각적인 산업응용을 염두에 둔 쪽에서 보면 또 너무 이론적이고. 그런 중간적 특성이 약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고 성장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아무튼 기업이든 학교든, 국내든 국외든 우리 통계물리 분야의 강점을 잘 알아주는 곳이 많이 있다면 좋을 것 같고, 나도 잘 찾아봐야겠다.

오히려 부모님은 주변을 보니 결국 공부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자리를 얻었었다며, 벌써부터 힘 빠지는 소리 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으면 계속 해 보라고 권장하시기는 한다. 근데 그때와 지금은 또 많이 다를 텐데 싶기도 하고... 너 졸업할때면 교수님들이 많이 은퇴하시지 않냐고 하는데 이미 그 시기는 거의 끝났다고 알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아카데미든 아니든, 물리학 백그라운드를 구체적으로 살릴 수 있는 커리어패스에 대해 encourage하는 얘기가 거의 아무데서도 들리지 않다 보니 나라도 적극적으로 틈날 때마다 여러 재밌는 포지션들을 찾아보고 소개하고 그러는데, 그래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예전부터 가졌던 내 고질적 문제점이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건 많은데도 계속 하던것만 하려고 해서 정작 실제 선택의 폭이 좁고 질투와 불안감만 커진다는 건데... 이게 장기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좀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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