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로 웜홀을 구현했다는 따끈따끈한 네이쳐 논문이 기사로 나왔다 (네이쳐 논문 링크, 국문기사(뉴시스) 하이퍼링크, 영문기사(quanta magazine) 하이퍼링크). 매우 네이쳐스러운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제들은 나도 교양수준으로만 알고 수식들은 거의 모르는데, 대략 이해한 내용을 써본다. '어려운 저차원 양자다체계 현상'과, '쉬운 고차원 중력현상'의 대응이라는 틀을 기억하면 읽기에 용이하다.
먼저 '양자전송'은 양자얽힘 현상에 의해 정보를 원격 전송하는 것으로, 양자암호(양자기반암호화, 양자내성암호)와 함께 양자통신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이루고 있다. 양자암호가 각국의 정부 및 산업계에서 상용화 관련 논의가 될정도인 것과 달리, 양자전송은 아직은 실험실 내의 기초과학 연구에 머무르고있다.
양자전송은 국소성 (대충 말해서, 물리적 현상은 공간상에서 정보가 잇따라 전달되면서 나타나며, 한번에 여기서 저기로 점프하진 않는다는 믿음) 을 위배한다. 이것이 직관적으로는 매우 이상하므로 해명이 필요한 역설이라고까지 생각되기도 했는데, 우리 학부 김석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상하긴 해도 국소성이 깨지는 게 그냥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이 양자세계의 비직관성이며 양자전송의 놀라운 점이다.
양자전송을 하려면 양자상태들 사이의 얽힘(entanglement)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여러 양자상태의 얽힌 상태를 유지하며 제어해서 한꺼번에 커다란 계산을 해내는 장치이므로 얽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많이 들어가있다. 그렇기때문에 양자컴퓨터는 얽힘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시스템이다. 이번 논문에서도 9 큐비트짜리 양자컴퓨터 위에서 양자얽힘을 활용해서 실험을 했다.
이 논문도 기본적으로 양자전송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여러 논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재밌는 점은 바로 홀로그래피 원리, 더 정확히는 AdS-CFT correspondence (반 드 지터 공간 - 등각 장론 대응성) 를 이용해서, 흔한(?) 양자통신을 넘어서 훨씬 멋있는 해석을 했다는 점이다.
AdS-CFT 대응성이란 홀로그래피 원리의 일종이다. 간단히 말해서 (1) 높은 차원 공간에서 정의되며 상호작용의 크기가 약한 이론 (주로 양자 중력이론의 후보인 끈 이론) 과, (2) 그 고차원공간의 '경계면'인 낮은차원공간에서 상호작용의 크기가 강한 이론 (주로 응집물질 계에 대한 양자 장론) 이 형식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고차원공간의 정보가 그 경계면인 저차원 공간에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홀로그램을 연상시켜서 그렇게 부른다.
이 대응을 이용하면,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다체계 (쉽게말해 양자컴퓨터 내지는 고체 및 반도체 같은 응집물질들) 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차원에서의 끈 이론의 풀기 쉬운 문제로 대신해서 쉽게 풀 수 있다. 더 멋있게 말하면, 물질 속의 집단현상 문제를 우주 속 중력 문제로 대신해서 풀 수 있다. 이것이 홀로그래피의 강력함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위와는 정반대 방향의 접근을 한다. 둘 사이에 그런 대응이 있다면, 실험으로 만들기 힘든 웜홀 같은 양자중력현상을, 실험으로 어느정도 구현가능한 저차원의 다체계현상으로 대신해서 실험할 수 있다는 재밌는 접근이다.
먼저 우주에 있(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웜홀에서 양자전송이 가능한것처럼, 실험실 속의 양자 다체계에서도 양자전송이 가능하며 이는 이미 꾸준히 실험으로 확인이 되고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양자정보의 전송이라는 점에서 통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별개의 물리현상이다. 전자는 양자중력 현상이고 후자는 중력과 상관이 없다.
이 논문에서는 양자컴퓨터의 설비로 sparsified SYK 모델이라는 양자다체계를 구현해서 실제로 양자전송을 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흥미롭게도 AdS-CFT 대응에 의해, 웜홀에 대한 중력이론과 같은 방정식으로 기술이 된다. 이렇게 웜홀의 양자전송과 양자다체계에서의 양자전송이 (형식적으로) 연결되게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를 양자중력현상에 대한 적절한 시뮬레이터로 쓸수 있다는 개념증명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웜홀에서 있어야 하는 여러가지 성질들이, 이 논문에서 연구한 시스템에서의 양자전송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다만 이 (가상의) 웜홀은 아주아주 짧은 거리 사이의 웜홀이라고 한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양자다체계랑 웜홀이 같은 이론으로 기술이 된다고 해서, 그 양자다체계 실험장치 속에 정말로 웜홀이 생긴 것인가? 이는 굳이 따지자면 따질 수 있는 과학철학적 문제인데, 보통은 상식적으로는 'No'라고 답할 것 같다. 실제로 논문에서도 웜홀을 실제로 만들었다 라고 무리하게 주장하기다는, 실험실 속에서 양자중력을 간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쭉 쓰고 나서 생각해 봐도 정말로 네이쳐스러운 논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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